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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Nov 12. 2022

쫄보라서 빼빼로는 못 받아

 올해는 데이란 데이는 다 챙기느라 아이들이 바빠 보였다. 아무렴 이벤트 업체에서 스카우트 해가야 할 학생들이 수두룩 빽빽하니 빼빼로 데이가 아무리 상술이라고 해도 이 아이들의 관심을 앗아갈 재량은 없다. 핼러윈 주 금요일에도 호박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서로 사탕과 초콜릿을 교환했던 게 엊그제인데, 대단하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그런 분별력 있는 시선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적었던 탓인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이 세 날만 되면 서로 누가 많이 받았는지 경쟁하곤 했다. 양손 가득히 등교해 여기저기 나눠주고, 또 받고 하다 보면 어느새 봉지는 다시 가득 차거나 더 넘쳐흐르기 일쑤였다. 7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다.

 '야, 니들은 빼빼로 받을 거야?'

 아침에 오자마자 우리      없이 아이들이 빼빼로를 책상에 두고 가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우선 받기는 했는데  찝찝한 마음에 동기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부분이 받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으나 받는 사람들도 있다더라 하며 받아도 그만  받아도 그만인 빼빼로 하나가 여럿 난감하게 . 나는 다소 무기력하게  대화들을 지켜보며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인지는 모르겠으나 구전 동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김영란 법이 만들어지기 전, 그러니까 빼빼로나 스승의 날 선물 정도는 의례 받던 시절이 있었다. 기실 촌지를 주거나 졸업 선물로 명품 정장을 주는 게 당연하던 그때, 선생님에게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하여 케이크 하나를 선물하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아무렇지 않게 그걸 받은 선생님은 얼마 뒤 교육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어떤 후속 조치가 뒤따랐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이라면 중징계를 피할 수 없다. 빨간 마스크 이야기처럼 어떤 경각심을 키워 주기 위해 만들어진 얘기일 수 있으나 나는 6학년 때 빨간 마스크를 철석같이 믿었더랬다.

 "선생님까지 챙겨줘서 너무 고마운데 선생님은 마음만 받을게!"

 언제나 그랬듯 별생각 없이 빼빼로를 돌려줬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만만치 않다. 아니, 내가  받겠다는데 되려 화를 내며   받냐고, 서운하다는 아이들에게 차갑게 거절하려는  입장이 곤란.

 "선생님! 신고 안 할게요! 그냥 받으세요!"

 그렇게까지 주장하며 내미는데도 받을 수가 없었다. 너나 너의 마음이나 신고가 아니라 세상이 아니꼬운 사람들이 어딘가에 불쑥 존재할 수 있는 거니까.

  안에 모래알이 씹히는  꺼끌꺼끌하다. 초콜릿을  받는 건 아무렇지 않으나 '신고를  하겠다' 다소 당황스러운 아이들의 말과 김영란 씨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상황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어른의 민낯을, 현실을 들켜버린  같아 부끄러웠다. 커피를  마시게 하고(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 보호자들도 있지만), 영상물이나 게임에 등급을 매기며 숨겨   헛수고가  듯하다. 사랑, 존중, 공정, 양보, 배려 같은 덕목을 가르쳐 봐야 뉴스 하나가 '세상은 원래 이런 거야' 대변해 버리니 진땀이 난다.

 분명 우린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읽으며 자란 세대이나 우리 모두가 부끄러움을 배우지는 못했나 보다. 역시 교육은 가르치는  아니라 배우게 하는 것이라는 선생님들 말이 하나 틀린  없다. 오늘도 어디선가 당당하게 누리는 사람을 대신해 내가 조금 부끄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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