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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Nov 14. 2022

줄 잘 서는 아이

 교대 부설 초등학교에  실습을 나갔을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이 적이 대단해 보였다. 아이들을 통제하는 기술들과 꿀팁들에서 오는 자신감. 나는 그것들을 전수받으며 현장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갔다. 힘들기로 악명 높았던 초등학교에서의 짧은 실습이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역시 달달한 열매는  고난의 결과인 것일까. 그다음 해에도 나쁜 뽑기 운으로 부설 초등학교에 가게 됐지만 불평하진 않았다. 그만한 성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빨리 퇴근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수업은 음악이었다. 지도안을 써서 검사받으러   나름 심혈을 기울였던 터라 획기적인 칭찬을 받지 않을까 자만했다. 하룻강아지가 아장아장 써낸 지도안이 호랑이에게 바로 통과될  없다. 그저 철없는 무지함에서 오는 당당함이었다. 당연한 결과이나  지도안부터 잔뜩 깨지고 시무룩했던 나는  번의 시도에 지도안을 완성했다. 하나의 지도안을 사흘에 걸쳐 써낸 나에게 호랑이가 말하길,

 "여기는 아이들 수준이 높아서 40분에 활동 3개는 거뜬한데 다른 곳은 2개도 벅찰 수 있어요. 여기가 평균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돼요."

 나는 통과됐다는 안도감에 우선 끄덕이고 보자는 식이었다. 이후에 배웠던 방법대로 10개의 지도안을 빠르게 써냈고 호랑이 선생님의 서명을 다른 실습생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수업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지도 선생님과도 잘 맞아서 실습 기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실습을 나갔을  부설초에서 구른 다수의 경험 덕분에 안심하기까지 했다. 마지막 습은 부설초를 꼭 거쳐야 했지만 문제없었다. 자주 와본 탓인지 어느 때보다 담백하게 부설 초등학교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여전히 대단했다. 줄을 서고 이동하는 동안 앞만 보고, 흐트러지지 않았다.  결과를 얻기까지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였을 선생님들도 그만한 에너지가 없다면 모습을 연출할  없었으리라. 그렇게 멀어지는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순간 가슴이 갑갑한  기분이 묘했다.

 저게 맞나?

 초등학생 하면 떠오르는 게 일자 반듯한 오와 열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다. 부설 초등학교 학생들이 워낙 눈치도 빠르고 똑똑하긴 하지만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세상 어떤 아이들과도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선생님 말에 잘 따라주는, 다루기 편하다는 사실 외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순종적인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본성을 무너뜨리고 체제에 순응시키는 게 교육이었던가. 예비 교사들이 꼭 거쳐가야 하는 관문 같은 부설 초등학교에서 보여줘야 하는 모습이 군대처럼 질서 정연한 모습이라면, 우린 교육에 대해 다시 한번 정의해야 한다.


 24권의 책을 복지부에서 배달시킨  의아하긴 하지만  학기   사업의 연장선이었던 듯싶다. 귀한 예산을 들여  책인 만큼 헛되이 나눠주기만 하면 무의미할  같아서 박씨전으로 어떤 수업을 해볼까 구상하느라 책을 바로 나눠 주지는 않았다. 24권을  곳에 쌓아두면   기둥의 높이가  앉은키만큼 높아 12개씩 나눴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다시 쌓아도  권의 짝이 없었다.  위가 평평해야 하는데 한쪽만   양만큼 볼록 튀어나왔다. 하는  없이  권씩  보기도 하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짝을 맞추며 세기도 했다. 24. 그러나  23 같은.

 자세히 보니 가장 아래는 짝이 맞으나  번째쯤부터 서로의 높이가 달라지더니 기어코  권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구겨지거나 접힌 곳이 없는데도 이런  보면  공산품이라고 해서 모든  똑같지는 않나 보다.

 올해는 아이들이 많이 버겁다. 아이들만큼이나 가정의 보호자와 소통이    막막하다. 작년이 편했던 이유는 내가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과  맞았기 때문이라는  실감했다. 공포정치로 체제를 바꿔야 하나 수도 없이 고민하지만 24권의 공산품과 부설 초등학교 학생들을 떠올리며 내가 추구했던 교육의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재고했다. 일단 네모 반듯한 정사각형을 만드는  사양한다. 자신의 모양을 유지하면 조금  뾰족하기만 해도 좋겠다. 서로 다른 네모가 모여 세모가 되기도 하고 동그라미가 되기도 하면 바랄  없고.

 말만 번지르르 하지 부족한  너무 많아 이젠 나에게 화가 나는 지경이다. 오래된 분노는 무기력함이 되고 이게 곪을 대로 곪아 간단한 연고 처방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막아도 막아도 새는 분노가 표정으로 솟고 말로 분출돼 죄책감이 들고 다시 무기력해지고. 악순환을 끊을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하는 수밖에.

 이미 굳어버린 30, 억지로 사랑을 끌어내려해도 가지각색 24, 특히 8명을 감싸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바른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힘이  거겠지 하며 위로한다. 내년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지 몰라도 올해를 거울 삼아  나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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