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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Nov 23. 2022

밝은 밤

마음의 보호대 같은 것이 부러진 기분이었다. 덜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가 사라진 것 같았다.
-밝은 밤-


 모래성으로 쌓은 성이 아니라 견고히 쌓은 성이라도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난공불락 요새 여리고는 하나님을 등에 엎고 7 동안  둘레를 돌며 나팔과 함성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함락당했다.

 여리고가 무너진 이유는 강력한 힘 앞에서,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힘이라는 게 꼭 어떤 행동일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었더라도 여리고성을 슬금슬금 좀먹고 있던 해악만으로도 신은 일할 수 있다. 전능한 신의 개입은 성을 무너뜨리는 외부적인 힘과 내부에서 갉아먹는 자기 파괴적인 생각, 사상, 부패 등을 모두 포함한다.


 주인공이 이혼이라는 사건에 단번에 무너진 것 같아도 기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나처럼. 이는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 좀체 눈치채는 것이 어렵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이 숱하게 닥쳤을지라도 바쁘다는 이유로 사소한 신호를 금세 망각하고 만다.

 주인공에게는 희령이 있었다. 무너진 걸 하나씩 다시 올릴 시간과 공간이 다시금 세상 속에 던져져 치이고 상처받아도 자정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줬다. 그건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다. 사람에 따라 1-2년이 걸리기도 하고 종신토록 무기력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기간을 단축해 주는 게 사람이다. 영옥 할머니는 지연이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같이 아파할 필요는 없다. 지나친 공감은 독이 될 때도 있다. 저 사람이 나 때문에 아프구나 하는 순간 그 사람에게 더 이상 기댈 수가 없으니.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간절하다. 감정을 배출할 수 있는 출구가 없다. 참아내는 게 직업이다 보니 인내가 과하다.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누르다 보니 휴지통이 터지기 직전이다.

 꼭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감당하는 게 버겁다. 하루의 1/3을 버티다 보니 나머지 2/3도 관성이 작용하는지 어느새 숨 한 번 들이쉬고 불편함을 참는 나를 발견한다.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미적지근한 일에서 벗어나 환기할 필요를 느낀다. 별다른 이유없이 뉴욕이나 도쿄에 가고 싶다. 런던도 좋고 호주도 좋다. 맛있는 디저트 하나 사서 한적한 공원에 앉아 한 입 베어물고 싶다.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도 사람을 대접할 일도 없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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