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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Nov 25. 2022

아버지의 해방일지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10권짜리 태백산맥을 읽으며 소소하게 찾은 재미에 사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읽으며 혼자 있을 땐 방에서 몰래 흉내 내기도 했다. 기회가 돼 전라도 분에게 한 번 읽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너무 오래된 말들이라 자기도 따라 하기 힘들다고 했다. 광양에 있는 친한 친구는 철판을 깔고 자기는 서울말만 쓸 수 있다며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를 해댔다.


 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 태백산맥이 빨치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 아버지의 가족이 2022년까지 버텨오는 이야기다. 빨치산의 딸은 홀로 서울 말씨를 쓰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덤덤한 3자의 위치에 존재한다. 그러다 마지막이 돼서야, 아버지를 화장하고 그 유언을 따르는 순간에 사투리를 쓰며 진정으로 아버지를 추모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가 참 지난했을 터이나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에선 작은 일화 하나하나가 감동이었고 해학이었다. 그녀와 그 가족의 삶은 비극이나 비극적이지 않았고 우스웠으나 가볍지 않았다.


 최근 장편 소설을 보면 대부분 인간미가 강조되는 따스한 내용들이 많다. 한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 그의 얘기로 전개되기보다는 그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의 사건들을 다루며 쩍쩍 갈라지는 마음밭을 해갈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가 보다. 다들 집으로, 개인으로 향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론 단체에 속하기를, 따뜻한 사람을 만나기를 갈구한다. 우리가 사람에게 피곤한 이유는 사람이나 사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어느 정도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라면 욕심이 문제일 수도. 나와 맞는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사소한 것 같아 보여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빨치산 아버지가 살아온 흔적들을 짚으며 그냥, 그런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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