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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Dec 21. 2022

내가 왜 그랬을까

 우리 반은 보통 점심 전에 급식 게임을 하는데, 이름이 급식 게임인 만큼 상품은 점수대로 급식을 받을 수 있는 약소한 것이다. 5모둠인 반에서 좀 늦게 먹어야 고작 16명 앞세우는 건데 그게 뭐라고 열과 성을 다해 참여해 주는 게 고맙다. 점심 후에 게임을 하게 된다면 초콜릿을 거는 편이다. 사탕, 견과류는 크게 인기가 없다. 캐러멜은 내 기호 식품이 아니라 제외됐다.

 배식 순서를 상품으로 걸면 생기는 문제가 딱 하나 있다. 배식하는 모둠의 경우 '오늘 어차피 급식 당번이니까' 하고 말아 버리는, 경쟁심이 즐기는 마음보다 압도적이라 포기를 공언하며 사기를 꺾는 아이들이 꼭 있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재미를 위해서고, 급식 좀 늦게 먹는 것에 생사가 달린 것도 아닌데 목숨 걸지 말라고 해도 안 된다. 개인 성향인가 보다.

 작년, 재작년에는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어 급식 당번의 경우 다른 모둠으로 보내거나 그냥 재미로 해봐 하고 말았는데 올핸 놀이에 진심인 아이들이라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필수였다. 뭐가 획기적일까 싶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급식 차를 대신 치워 주는 것. 급식 당번의 경우 2등까지는 급식을 대신 치워 준다. 덕분에 참여율은 훌쩍 올랐고 모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오늘도 어김없이 게임을 준비했는데 급식 당번이 에이스들만 모인 모둠이었다.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치기는 싫지만 나도 급식  치우는  너무 귀찮긴 하다. 사실 속으로는 '제발 오답' 되뇌며 장난스럽게 저주하기도 했으나 반전은 없었다. 더군다나 에이스들의 주종목인 어려운 수학 문제 풀기가 오늘의 게임이라 속절없이 1등을 내어주었다.

 황망한 마음에 급식 당번 차를 치워 주겠다는 말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급식 당번들이 조바심이 났는지 내 자리로 와 화이트보드에 한 마디를 썼다.

 '5모둠 급식차 치워주세요...'

 나는 당연히 치워 주기로 약속된 거라 말하지 않은 건데, 아이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던 거 같다. 성적 관련해 할 일이 태산이었어서 잔뜩 귀찮은 투로, 그러나 약속이라서 해야 한다는 마음을 귀엽게 담아 답장을 썼다.

 'ㅠ시룬데...'

 그걸 본 5모둠이 친구들까지 동원해 우르륵 몰려와 '우와 선생님 인성', '너무해', '마상' 등을 쓰며 귀엽게 투정했다. 나는 깜짝 놀라 학생들에게 해명했다. 안 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하기 싫다는 말이었다고, 당연히 해 줄 거라고 했더니 그제야 마음을 놓고 화장실에 가는 뒷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모두 운동장에 나가 텅 빈 교실 속에서 급식 차를 치우고 있으니 아차 싶기도 했다. 그래도 애들이 좋아하면 됐지 하며 2년 취사병 경력으로 쌓은 속도로 후다닥 치우니 봉사라도 한 듯 뿌듯했다.

 그래도 내일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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