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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Dec 15. 2022

노는 게 진심인

 같은 학년을 꾸준히 하다 보면 교과 이론은 물론 수업 흐름과 걸리는 시간까지 대략 파악된다. 산소 집기 실험과 성질을 알아보는 과학 실험은 대충 2시간, 이산화 탄소도 매한가지다. 독도 단원에 들어가기 전에 가사 쓰기 도레미 퀴즈는  시간 정도. 유일한 변수는 아이들이다. 학년도 별로 실력이 항상 똑같을  없어 오래 걸릴 때도 있고 짧게 걸릴 때도 있다.

 학기 말이 되면 내가 가장 선호하는 수업은 미술이다. 진도는 어지간하면 끝이 난다. 대책 없이 방학 며칠 전에 모든 진도를 끝내면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무작정 영화만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 , , ,  외의 수업도 필요하다. 게임도 동나고 운동장에 나가는  피차 추위에 괴로우니 난이도가 있는 작품을 미술 시간에 완성하는 일이 적당한 과업이다.

 작년 재작년에는 민화 그리는  그렇게 오래 걸렸다. 재작년에는 미술에 소질도 있고 애살도 있는 학생들이라 4시간 정도 소요됐다. 작년에는 미술에  뜻이 없는 아이들이라도 정성을 들이는 편이라 3시간 걸렸다. 올해는 여학생들 손이 꼼꼼하다 보니 대부분의 미술 활동을 재시간 안에 끝내지 못했으나 남학생들은 휘리릭하고 마는 편이라 시간 정하기가 애매했지만 여학생들에게 맞추기로 하고  시간 반을 계획했다.

 1교시는 회장 선거 유세 동영상을 20  보고 민화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한  활동을 시작했는데 맙소사, 우리  특수성을 간과하고 있었다. 방심했다. 우리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그림을 멈추지 않는다는  잊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일어나서,

 "얘들아, 쉬는 시간이야. 가서 화장실 다녀와."

 미동도 않는 아이들. 쉬는 시간 10분을 무시할  없는  40 수업  10 일찍 마치게 되는  25%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실습 담당 선생님들이 늦게 마치는  상관없으나 일찍 마치는   된다고  정도니 수업 중 시간을 못 채우는 건 교사로서 불명예다. 우리 반은 워낙 자유분방한 아이들이라 수업 시간에 10분의 자유를 주게 되면   선생님들에게 미안할 일들만 일어난다. 나는 다시 다급하게,

 "야, 나가서 좀 놀아. 뭐 바쁜 일이라고."

 그때서야 몇몇 학생들이 고개를 들고 시계를 보더니 '아 쉬는 시간이구나' 하곤 다시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그 어떤 시간에도 볼 수 없는 진지하고 집중하는 모습. 나는 문득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얘들아, 근데 왜 쉬는 시간에 미술 하는 거야?"

 25명의 아이들이 감동스러울 정도로 단합하여 대답했다.

 "빨리 끝내고 놀려고요."

 무섭다.  아이들. 노는 것에 이렇게 진심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항상 해야 하는  싫어도 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하고  생각만 하는 아이들이 없는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대답을 듣고 처음에는 속으로 뜨악하며 혀를 내둘렀건만  후자의 관점에서 보니 귀여운  같기도 하고.

 그래도 수업 시간에만 그려줬으면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교사 직업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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