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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an 17. 2023

당신은 어떻게 존재하십니까?

 되도록이면 월화목 7시엔 주짓수 도장에 가려는 편이다. 여의치 않은 경우 다른 날에 가더라도 일주일에 세 번 출석은 나와의 약속이다. 가족사 같은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한다.

 7시 수업 40분 전에 도착해 간단한 맨손 운동으로 몸을 푼다. 코치님이 말없이 들어와 발로 툭 치거나 주먹으로 가볍게 배를 퉁 친다. 뒤이어 또래 여자 관원이 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걸 보며 또래 여자 관원이 장난스럽게,

 "니는 헬스 하러 오제?"

 하면 코치님이 주변에서 거든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헬스도 하러 오는 거니까. 어엿한 주짓수 삼 년차지만 썩 잘하는 것도 아니라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볍게 던진 말이니 나도 가볍게 받아치고 만다.

 "당연하지."

 정작 관장님은 별말씀이 없으시다. 주짓수 후에 가벼운 근력 운동을 적극 추천하시긴 하지만 내 입장에선 마음이 썩 편치 않다. 주짓수가 주가 돼야 하는데 근력 운동을 먼저 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인다. 집이 먼 바람에 수업 후에는 오래 머무는 게 부담스러워 결국 일찍 오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철문이 삐걱대며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인사가 여태 어색한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가벼운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늦은 저녁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업이 시작하고 한창 스트레칭 중일 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관원도 있다. 그럼 코치님이 소곤 거린다.

 "니 끼리끼리 왔다."

 동준이는 스트레칭을 싫어한다. 스트레칭이 끝나고 나면 내 곁으로 살며시 와 '스트레칭 보이캇트 하겠습니다'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해대는 웃긴 놈이다. 어쩌다 내가 따라 하려 하면 꼭, 그게 아니라 '보이캇트'라고 해야 한다며 트집을 잡는데 내가 들었을 땐 그게 그거다.

 동준이는 이과 주제에 제법 조잘거릴 줄 아는 친구다. 어휘력이나 문장력이 가히 감탄스럽다. 적절한 유머를 곁들여 나를 아주 가지고 노는 동생이다. 밥 한 끼 사주고 싶은 귀엽고 웃긴 내 단짝이다.

 체육 선생님과 C팀, 존경스러운 최고령 형님, 새들무새 형, 입담이 어마무시한 여성 관원들. 훌륭한 코치님과 관장님. 그들이 내가 주짓수를 꾸준히 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스트레스 배출구라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지.

 순위를 매길 순 없다. 모두가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게 나의 주짓수니까.


 근래 존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꼭 저 안에 있는 게 땅을 굳게 딛고 선 진짜 같고 난 붕 떠 있는 가짜 같았다. 앞으로 가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한없이 뒤로만 후퇴하고 있는 거 같은 나를 인식하며 나는 어떻게, 왜 존재하는 건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게 여태껏 보인 세상을 향한 나의 태도다. 일종의 방어기제였고 제법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꾸준히 문을 두드려 준 내 사랑하는 행듀 계원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사랑을 배워갔다.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으려고 했고, 나를 먼저 보여 주려고 했고, 들어오라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몇 몇 결과는 참담했다. 과정이 옳지 못했으니 결과가 참담할 수밖에. 그러나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 교회 사람들, 주짓수 관원들, 내 동기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나 있었을까. 단단한 벽에 둘러 쌓여 있었던 건 이만큼이나 손쉽게 무너지는 나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존재는 타인으로 증명된다. 주짓수를 끝내고 간단하게 물칠만 하고 나오는 기분이 한껏 상쾌해지며 깨달았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나 상호작용이 나라는 존재가 땅을 딛고 서게 했다. 예를 들면 눈빛, 웃음, 손동작, 태도, 포옹이 그랬다. 오늘도 자꾸만 무너지려고 하는 나를 일으켜 세워준  결국 동준이었고 코치님이었고 관장님이었고...

 전화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계속 떠오르려고 하는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는 내 소중한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볼 계획이다. 오늘 내 전화를 받은 당신이 나를 살게 했다. 미리 감사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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