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이면 월화목 7시엔 주짓수 도장에 가려는 편이다. 여의치 않은 경우 다른 날에 가더라도 일주일에 세 번 출석은 나와의 약속이다. 가족사 같은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한다.
7시 수업 40분 전에 도착해 간단한 맨손 운동으로 몸을 푼다. 코치님이 말없이 들어와 발로 툭 치거나 주먹으로 가볍게 배를 퉁 친다. 뒤이어 또래 여자 관원이 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걸 보며 또래 여자 관원이 장난스럽게,
"니는 헬스 하러 오제?"
하면 코치님이 주변에서 거든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헬스도 하러 오는 거니까. 어엿한 주짓수 삼 년차지만 썩 잘하는 것도 아니라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볍게 던진 말이니 나도 가볍게 받아치고 만다.
"당연하지."
정작 관장님은 별말씀이 없으시다. 주짓수 후에 가벼운 근력 운동을 적극 추천하시긴 하지만 내 입장에선 마음이 썩 편치 않다. 주짓수가 주가 돼야 하는데 근력 운동을 먼저 하고 있으니 눈치가 보인다. 집이 먼 바람에 수업 후에는 오래 머무는 게 부담스러워 결국 일찍 오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철문이 삐걱대며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인사가 여태 어색한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가벼운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늦은 저녁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업이 시작하고 한창 스트레칭 중일 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관원도 있다. 그럼 코치님이 소곤 거린다.
"니 끼리끼리 왔다."
동준이는 스트레칭을 싫어한다. 스트레칭이 끝나고 나면 내 곁으로 살며시 와 '스트레칭 보이캇트 하겠습니다'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해대는 웃긴 놈이다. 어쩌다 내가 따라 하려 하면 꼭, 그게 아니라 '보이캇트'라고 해야 한다며 트집을 잡는데 내가 들었을 땐 그게 그거다.
동준이는 이과 주제에 제법 조잘거릴 줄 아는 친구다. 어휘력이나 문장력이 가히 감탄스럽다. 적절한 유머를 곁들여 나를 아주 가지고 노는 동생이다. 밥 한 끼 사주고 싶은 귀엽고 웃긴 내 단짝이다.
체육 선생님과 C팀, 존경스러운 최고령 형님, 새들무새 형, 입담이 어마무시한 여성 관원들. 훌륭한 코치님과 관장님. 그들이 내가 주짓수를 꾸준히 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스트레스 배출구라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지.
순위를 매길 순 없다. 모두가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게 나의 주짓수니까.
근래 존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꼭 저 안에 있는 게 땅을 굳게 딛고 선 진짜 같고 난 붕 떠 있는 가짜 같았다. 앞으로 가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한없이 뒤로만 후퇴하고 있는 거 같은 나를 인식하며 나는 어떻게, 왜 존재하는 건지 끈질기게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게 여태껏 보인 세상을 향한 나의 태도다. 일종의 방어기제였고 제법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꾸준히 문을 두드려 준 내 사랑하는 행듀 계원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사랑을 배워갔다.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으려고 했고, 나를 먼저 보여 주려고 했고, 들어오라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몇 몇 결과는 참담했다. 과정이 옳지 못했으니 결과가 참담할 수밖에. 그러나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준 교회 사람들, 주짓수 관원들, 내 동기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나 있었을까. 단단한 벽에 둘러 쌓여 있었던 건 이만큼이나 손쉽게 무너지는 나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존재는 타인으로 증명된다. 주짓수를 끝내고 간단하게 물칠만 하고 나오는 중 기분이 한껏 상쾌해지며 깨달았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나 상호작용이 나라는 존재가 땅을 딛고 서게 했다. 예를 들면 눈빛, 웃음, 손동작, 태도, 포옹이 그랬다. 오늘도 자꾸만 무너지려고 하는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결국 동준이었고 코치님이었고 관장님이었고...
전화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계속 떠오르려고 하는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는 내 소중한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볼 계획이다. 오늘 내 전화를 받은 당신이 나를 살게 했다. 미리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