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달과 6펜스-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는 하루를 살아도 본인의 뜻대로 사는 유쾌한 인물로 묘사된다. 사회적 통념보다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라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불편하다.
우선 내가 동경하는 그 모습을 닮을 수 없기에 속이 쓰리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넘치지 않아 계획 없이는 불안하다. 통장에 꽂히는 꾸준한 수입 없이 몇 달 버티지도 못하겠지. 쳇바퀴 같은 일상이 아니라면 나는 진즉에 머리가 터져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또 편협한 틀을 벗어난 자의 자유로움이 관습을 지키는 자의 안정성을 조롱하는 듯해 뾰로통하다. 왜 관행을 지켜야 하냐는 그들의 질문에 무난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말을 아낀다. 기실 사회라는 것이 꼭 필요한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는 가설은 내게만 충분할 뿐 그들에겐 별 시답지 않은 우답이다.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 조르바를 보고 있자니 뻔하게 살고 있는 내 인생이 초라하다. 그나마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자부심,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사회나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는 그 알량한 자존심도 변명이란 이름표를 뗼 수 없다.
나는 천재를 만나본 적이 없다. 괴짜는 몇 만났으나 그 괴짜들도 여럿 모아두니 그들끼리 경쟁하는 모습, 더 많이 가지려고 아등바등하는 치열함이 하등 나와 다를 게 없었다. 천재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 스트릭랜드처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더니 천재가 나오기엔 이미 우리 세상이 지나치게 편리해진 게 아닐까. 인생의 상품화, 그게 참으로 문제다. 내게서 낭만을 앗아가고 꿈을 훔쳐간 것도 SNS에 내 삶을 전시하면서부터다.
한때 나는 타인의 시선이 내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 자부했기에 SNS를 시작했다. 그 교만이 현재의 나,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순간에 더욱 열을 내며 게시글을 올리는 나를 만들었다. 기나긴 인생길 사시사철 마음이 건강할 수 없음을 예견하지 못했다. 나는 현재, 자만의 참혹한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집요하게 떠들고, 웃고, 탈선하고, 방관하고 있다. 언제쯤 ‘나’라는 존재의 종말에 숙연히 묵념할 수 있을까. 천재이고 싶어 몸부림치는 심연의 나를 누군가 목격하곤 그 역겨운 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길 바란다. 차라리 그게 마음은 편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