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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r 08. 2023

편하게 아프지도 못하는 선생님

 치통이 시작된 건 저번 주쯤부터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치아가 시려서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양칫물, 커피, 티, 음식 등. 행여나 아이스를 마시는 순간이 오더라도 빨대를 이용해 곧장 목구멍으로 집어넣는 묘기를 선보였다. 맛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으나 다행히 맛있는 음료를 맛이지는 않았더랬다.

 일요일엔 교회에서 괜스레 일찍 귀가했다. 기분이 퍽 상했던 것만 기억에 남지 사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집에 와서 엄마에게 다짜고짜 치아가 아프다고 칭얼거렸다. 치과 간호조무사로 근무했던 엄마는 증상을 듣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통증이 대수롭지 않기도 했다. 잠시 욱신거리고 말았으니까.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일찍 잠에 들었는지만 새벽 1시에 기상했을 땐 이야기가 달랐다. 더 이상 시리고 욱신거리는 단계가 아니었다. 1년 전 시술했던 보철 치아 자리 주변이 맥박에 맞춰 두근거리는 증상과 입안을 누가 망치로 때리는 증상이 발현됐다. 별거 아니겠지, 금방 사라지겠지 싶었는데 그 후로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염증이 아니면 이렇게 아플 수 없다는 생각에 냉찜질을 하다 참을 수가 없어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잠시 뒤 발휘된 효과로 쪽잠을 잔 나는 턱을 붙잡은 채 출근 준비를 했다.

 이렇게 자주 먹어도 되나 싶어 출근하기 직전까지 버티다 차에서 진통제를 또 한 알을 복용했다. 어떻게 묘사하기도 힘든 통증이 지속되고 차라리 치아를 다 뽑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1교시를 마무리했다. 나는 곧장 보건실로 달려가 사정을 얘기했다. 보건 선생님은 타이레놀 계열을 먹었으면 프로펜 계열을 교차 복용하는 게 더 좋다 하시며 한 알을 건네셨다. 그럼에도 통증이 가시질 않아 기존에 내원하던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예약 없이는 진료를 볼 수 없다는 걸 사정사정해 오후 8시에 진료를 잡았다. 주짓수가 마음에 걸렸지만 하루 정도야 뭐.


 그 만한 치통을 견디며 안전 운전할 자신이 없어 엄마와 함께 동행했다. 병원은 한산했다. 접수 후 사진을 찍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꽤 당황한 듯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확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 참담했다. 우선 부은 잇몸을 먼저 해결한 뒤 경과를 지켜보자던 선생님은 스케일링과 약만 처방했다. 여전히 두근두근하는 잇몸이 신경 쓰였지만 괜찮을 거라며 애써 스스로 안심시켰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참았다. 빈속에 처방약과 타이레놀을 번갈아 먹으며 견뎠다. 아침에 내원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지만 선뜻 치과에 갈 수 없었다. 예약도 예약이지만 받은 약을 몇 봉 섭취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내가 가면 수업은 누가 하나. 하는 수 없이 식사를 거르면서도 수업을 위해 진통제로 속을 가득 채웠다. 학생들에겐,

 "선생님 오늘 치아가 너무 아파서 수업 중 종종 찡그릴 수 있지만 너희들 때문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

 하고 양해를 구했다.

 치통은 도를 넘어 두통과 인후통으로 번졌다. 처방받은 약은 다 먹자는 일념이 육체의 멱살을 붙잡고 시간을 헤쳐나갔다. 식후에 먹으라는 처방 지침을 무시하고 새벽에 깨면 먹고 아프면 먹고. 결국 오늘 아침은 일념과 고집이 육체의 고통에 패배했다. 서럽고 더러워서 교감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이러쿵저러쿵 울먹이며 사정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젊은 사람이 왜 그래."

 깜빡하고 원격 업무 지원 시스템 신청도 하지 않아서 복무 좀 대시 올려 주실 수 있냐 했더니 젊은 사람이 왜 그러냐는 말 뿐이셨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치사해서 오기로 출근했다. 일념과 고집 위에 자리 잡은 자존심과 오기는 무시무시했다.

 기실 교감 선생님 보다도 보결에 들어올 선생님들이 더 신경 쓰였다. 보결 들어가는 선생님들의 심정을 어찌 모르랴. 나는 오늘도 혈액을 진통제로 가득 채우곤 웃으며 수업을 마쳤다. 교감 선생님도 내심 미안했는지 출근한 나에게,

 "선생님들 보결 넣으면 되는데, 그냥 병원 가지."

 '교감 선생님, 그게 싫다고요.'


 아플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직장인은 아프면 안 된다. 통증에 한번, 직장 상사 눈초리에 또 한번 눈물 난다.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모자라 병원 가는 것도 눈치 보며 가야 하는 입장은 어제고 내일이고 피하고 싶다. 주짓수 하다 손목 인대가 늘어났는데 다음 날이 공개 수업이라 출근했던 작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건강하자. 나이를 먹을수록 아프면 자기만 손해라는 말이 와닿는다.

 다행히 오늘은 의사 선생님이 진단을 내려줬다. 마취 후 진행된 시술 덕분에 현재는 통증이 많이 가셨다. 제발 오늘 새벽은 깨지 않고 쭉 잘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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