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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19. 2022

순례 주택

2022 원북원부산

오죽 자신이 없었으면 아파트에 산다는 걸로 자기를 확인하고 싶었겠어.
-순례 주택-

 막 영국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오고 난 뒤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좀 다녀왔다고 그 출신이나 모습이 바뀐 거도 아닌데, 마치 런던 부촌에 집 한 채 있는 거처럼 으스댔다. 말끝마다 런던, 영국을 들먹이며 친구들을 진절머리 나게 했다. 내가 유럽 얘기를 꺼낼 때마다 친구들은 손가락을 접으며 '오늘 영국 얘기 벌써 3번째다'하며 재치 있게 말을 끊었다.

 

 우습지만 영국 영어 뽕에 취해 별꼴을 다 보여주기도 했다. SNS에 글을 올릴 때 영어로 해시태그를 달았는데 스펠링도 잘 모르는 회화 표현은 일일이 구글링 했었다. 사실 이건 별꼴 축에 속하지도 않는다. 한날은 공공장소에서 영어로 통화하는 척하기도 했다. 한날은 아니고 꽤 많은 날 그랬다. 내 억지스러운 모놀로그를 들어야 했던 건 대게 카페에서 마주친 아주 잘나가 보이는 사람들, 주짓수 체육관을 나오며 마주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주 우쭐거리며 말하긴 했다.


 생각해 보면 그 순간들 속, 나는 [순례 주택]에 나오는 1군들처럼 좁은 곳에 서 있었다. 경매대에 정연히 솟아 꾼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꿋꿋이 견디며 고개를 쳐들고 나의 가치를 뽐냈다. 한 편으로는 경매대에 올라간 것 자체가 수치스러웠지만 이왕 팔릴 거 비싸고 싶었다. 실제로 가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값만 비싸고 싶었다. 자본주의에서 가격이 가지는 힘은 그 정도니까.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은 내 글에도 영향을 미쳤다. 순수하게 쓰던 글에 미사여구가 붙고, 어려운 말들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내가 선 경매대가 무대가 아니며 꾼들은 무관심한 행인에 불가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가 명품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순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고왔다. 1군들의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고학력자에게 전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그 속에서 치열하지만 행복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위치, 직업, 재산, 능력같이 형용사나 목적어에 불가한 것들에 휘둘리지 않았다. 주어인 자신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과거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매일같이 격렬한 전쟁을 치렀을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패할 때도 있었겠지만 승리의 깃을 휘어잡는 순간이 모래알처럼 많았고 빛났을 게 분명하다. 살아가며 크고 작은 내면의 다툼들이 또 있겠지만 줄곧 이겨 온 경험을 바탕으로 연패할 모습이 선한 것처럼.


 타의든 자의든, 이웃의 모습을 배워가는 중인 1군들도 얄미웠으나 흐뭇했다. 아버지나 언니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결국 거북 마을에 적응해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 그날엔 그들이 여전히 가난할지라도, 풍요롭고 인색하지 않다는 소문이 파다할 것이다. BMW 미니가 있든 없든, 정교수가 되든 안 되든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됐을 테니까.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증명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말하고 다녔다. 동기들 중에서 내가 가장 못난 거 같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았다. 주눅 든 마음에 뭐 하나 특별하게 잘하는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다. 혼자서 애쓰는 내 모습이 하나님께 얼마나 처량해 보였을까. 살얼음 위를 위태롭게 걸어 다니는데 멀리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나에게로 돌아올 때가 됐다."

 그 후, 죄와 헤어짐을 기점으로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충격이 컸었는데 이제는 그 흉터마저 새삼스럽다.


 나를 형용해주는 건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요즘 내 존재 자체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말을 매 분 매 초 느끼며 든 생각이다. 은혜고 축복이다. 아직까지는 순례처럼 세상과 휴전 중에 있지는 않고, 내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승리하는 날이 더 잦은 단계다. 곧 휴전을 맞이하게 될 테지만 경계를 풀지 않으려고 한다. 전쟁을 예측할 순 없지만 대비할 순 있으니 항상 깨어 기도하며 묵상함으로 내 마음의 중심을 잘 지킬 것을 다짐한다. 순례자의 발걸음이 목표한 곳까지 닿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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