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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06. 2022

머리숱 많은 아이

'나는 교사다' 서포터즈 1기, 위즈덤하우스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이상해
-머리숱 많은 아이-


 전역을 며칠 남겨둔 날이었다. 여전히 쌓은 점수가 남아 외출을 하려고 사복을 입었다. 유독 사무실이 붐볐는데 중대장님이 내 머리를 보더니 한 마디 하셨다.

 "야, 니 탈모가?"

 나는 순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닙니다!'하고 대꾸했고 뇌까리는 나에게 친구가 흥미로운 의견을 개진했다. '그 말 듣고 화나면 탈모야'라는 웃기지도 않는 주장이었는데 그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로 내 머리숱이 적은 것일 뿐이며 모발이 가늘어서 탈모처럼 보이는 거라고 대답했다. 최대한 의연한 척하면서.


 머리숱이 많으면 얼마나 많길래 책까지 썼을까 싶어 그림을 살펴보니 가히 풍성하긴 했다. 뭐든 도가 지나쳐도 좋지 않은 법인데 굉장히 귀엽게 그려진 잔디(주인공)가 인상적이었다. 잔디를 보며 부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학교에서 잔디가 어떤 고생을 하게 될지 염려했을까. 잔디의 머리를 정상의 범주로 깎으려던 그들의 노력을 엿보면 그들도 잔디의 머리를 골칫거리 정도로 여기는 거 같았다. 하지만 잔디는 자신의 머리를 사랑했다. 자신의 특별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 천연덕스러운 기질이 잔디를 더 빛나게 했다.

 사람들은 빛나는 것을 좋아한다. 빛이 난다는 건 따뜻하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잔디의 빛깔을 잘 설명해주는 대사는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이상해"다. 자신을 이상하다 말하는 친구에게 세상에 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현답을 준다. 잔디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잔디는 아마 그 친구의 눈높이에 맞춰 얘기했을 거다. 만약 잔디의 친구가 '네 머리 참 멋지다' 했다면 잔디는,

 "살아 있는 건 다 멋져."


 출근이 어떻게 매번 좋겠냐만 얼마 전까진 월요병을 심하게 앓았다. 그때 마음속에 든 생각 하나, 아이들을 칭찬해주자. 총원 24명이니 하루에 6명 정도 칭찬하면 일주일이 넉넉했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기보다 유심히 보며 좋은 점들을 찾았다. 그때부터 출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아무리 내 옆에 예쁜 꽃이 피어 있어도 인지하지 못하면 볼 수 없다. 그 사람에게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조금 천천히 걸으며 풍경도 즐기고 땅의 감촉, 풀의 냄새, 볕의 따사로움도 느끼면 좋으련만, 재빠름과 완벽함을 요구당하는 게 익숙하다 보니 느긋하게 해야 하는 일도 땀을 뻘뻘 흘리며 최고가 되려고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그건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크게는 하나의 우주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보단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 던질 수 있는 선생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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