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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l 31. 2022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

'나는 교사다' 서포터즈 1기, 위즈덤하우스

저는 그 이유를 알아요 우리 반에는 이상한 아이들만 모였으니까요.
-이상한 아이 옆에 또 이상한 아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사귀었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때의 연애란 풋사랑 축에도 속하지 않는, 도무지 연애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연애한다는 레이블을 얻고 싶어 안달 난 학생은 아니라 평소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는데 하루는 한 여학생이 버디버디로 투박하게 사귀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해 흔쾌히 승낙했고 그 학생은 내 기억 속 첫 여자 친구가 됐다.


 우린 무언가를 하기보단 그저 메시지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종의 21세기형 기행을 이어나갔다. 이전과 다를 게 하나 없는 날들이 지나갔고 그날도 우린 어김없이 버디버디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친구네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지켜봤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을까.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 한 친구가,

 "걔랑 헤어지면 안 돼? 나도 걔 좋아한단 말이야."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딱 버디버디 아이콘만큼 가볍게 여겼던 건지 철이 없었던 건지 나는 곧장 헤어지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치의 미안함도 없었던 걸로 보아 양심이나 염치가 어떻게 됐던 게 분명했다. 친구는 기뻐 뛰며 연신 고맙다고 말하곤 메신저로 그 여학생에게 곧장 고백했다. 그렇게 새로운 커플이 탄생했다. 친구는 새로운 여자 친구와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이 나는 다른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자작하게 먹는 편인데 친구   명이 끓인 라면은 물이 많아 싱거웠다.  참고 먹다 문득 맛없는 한강 라면을 먹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했고 막연하게 억울했다. 울어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울어야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거리낌 없었던 결정과는 달리 라면을 먹다 말고 펑펑 울었다. 되돌리기엔 일이 너무 멀리 가버렸다는 사실이 서러웠던 걸까?


 말 그대로 기묘한 경험이다. 나도 한 때는 이상했나 보다.


 유리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진행되는 얘기라 모든 등장인물이 다소 엽기적이었다. 말이 없는 사촌과 맞춰주지 않으면 우는 친구. 유리는 일방적으로 책임감을 강요받았다. 냉소적인 짝꿍, 말꼬리를 잡고 놀리는 친구도 유리에겐 버거웠다.


 되돌아보면 옛날에는 사소한 일들에도 분개하며 쟤 이상하다고 각혈했다. 스스로는 돌아보지도 못하고. 라면 먹다 우는 건 무슨 경우인가. 친구들이 보며 뭐라고 생각했을까. 이제야 그걸 회상하며 부끄러워 하는 것도 정상 범주에서 다소 벗어났다. 분명 기억 저편에 꺼내기도 요기로운 일들이 많겠지.


 그렇다면 지금은 정상일까. 글쎄, 유리가 판단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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