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세상구경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 겨울 방학에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가끔 누군가 묻는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고. 처음엔 무서웠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으로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행의 시작은 차박이었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고심하다 중고로 구매한 경차 '레이'. 작은 몸집이지만 제법 공간이 있는 차여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차박을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버스나 전철을 타고 이동해야하는 범위 정도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이젠 어디든 마음껏 갈 수 있고 심지어 어디서든 잘 수 있다니. 너무 좋잖아.
부푼 마음으로 차박 카페에 가입을 하고 정보를 얻었다. 캠핑장에서 예행 연습을 마치고 조금 먼 여행지로 잡은 곳이 남양주 한강공원. 일단 숙소(?)부터 확인해야 하니 공원으로 들어가 주차장을 주욱 둘러보고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에서 배운대로 트렁크 문만 열면 눈 앞에 한강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좋다 좋다.
낮에는 별로 무서울 것이 없다. 여행이 늘 그렇듯 낮에는 미리 계획한 스케줄대로 돌아다니느라 바쁘니까.
남양주에 왔던 목적이 도자기 체험이라 시간 맞춰 도자기를 만들러 다녀왔다. 그리고 한강변을 따라 걷기도 하고 남양주 읍내도 구경했다. 경기도권인데도 아직 시골스러움이 남아있는(내 기준에) 작은 읍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재밌었다. 2층을 넘지 않는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왕복 2차선 도로에 차는 제법 있었지만 신호등은 없었다. 시장에서 간단히 저녁으로 먹을 것을 사고 길에 있는 작은 동네 서점에서 아이 책도 한 권 샀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여행을 가면 그곳의 시내를 걷고 골목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며 어떤 가게들이 있나 구경했던 것이. 프랜차이즈 매장도 많지만 로컬 매장도 많이 있다. 다음에 같은 곳을 찾아가면 눈에 익은 그 길 곳곳이 기억에서 살아나 반가운 마음이 든다. 별 것도 아닌데 여행에서 느끼는 이런 소소한 감정이 좋다.
낮은 그렇게 잘 보냈는데 문제는 밤이다. 어른 여자1, 아이 여자1. 여자 사람 둘이서 차에서 자려고 하니 여간 무서운게 아니었다. '괜찮아! 차박카페에서 많이 봤잖아. 여자 혼자서도 막 돌아다니고 해도 괜찮잖아. 우리나라 치안은 무지 좋은 편이래. 그러니 우리도 별 일 없을거야. '라고 마음을 다독였지만 혹여나 여기 있는 누가 여자 둘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갑자기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가 부스럭거리는 것이 보였다. 빼꼼히 내다보니 옆의 차도 우리처럼 차박을 하러 온 듯 트렁크를 열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조금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차박이라는게 차 안에 불을 켜두고 차 안에서 밥도 먹고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영화도 보며 숙소에서 할 일을 차에서 해야한다고 보면 된다. 어두운 주차장 한 켠에 커튼이 쳐져있고 불이 켜져있는 차가 있으니 외부에선 자연스레 눈이 간다. 그 시선이 굉장히 신경쓰이던 찰나에 비슷한 사람이 있으니 어찌나 맘이 놓이던지. 그 후부터는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았다.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다 내려놔지지가 않아서 미어캣처럼 주변을 경계하다가 차 문을 꼭꼭 잠그고 잤다.
차박으로 여행을 시작했으니 숙소를 잡고 가는 여행은 더 수월했다. 길 한복판의 차 안보다 숙소는 훨씬 더 안전하니까.(이것도 숙소 나름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있었지만 이건 차차 다시 쓰기로 하고.) 나쁜 일이 안 생긴다는 100%의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떠나지 않기에는 너무 아쉽다. 좋은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다니며 우리나라 치안이 생각보다 꽤 괜찮다는 것과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천천히 배웠다. 오히려 마음을 나눠주는 분들이 훨씬 많았다. 현금을 내야하는 주차장에 잔돈이 모자라면 깍아주셨고 식당에 가면 아이 먹을 것을 더 주셨다. 계산하고 나갈 때 아이에게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다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손해보면 안된다는 팍팍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나는 여행을 하며 많이 배운다.
친구나 지인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충분히 즐겁지만 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우리만의 편안함이 있다. 혼자하는 여행과 비슷하다고 할까.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나와 아이의 취향에 맞춘 여행을 할 수 있으니 여유있고 편하다. 거기에 더해 아이지만 말상대가 있으니 혼자하는 여행보다 재밌다. 언제까지 나와 다녀줄진 모르겠지만 아이가 싫다고 하기 전까지 더 부지런히 다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