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량품이었다.

마라닉 러닝 30일 챌린지 15일 차

by 박이운

"넌 사회에 나가선 안 되는 불량품이야."


대학 시절 한 교수가 내게 말했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늘 그랬듯 금방 잊어버렸다. 아니 잊은 줄 알았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딘 2011년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밤 12시까지 이어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현관 문고리를 잡아 돌리지 못하고 문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을 해진 구두 끝만 바라봤다. 몇 분이 지났을까. 그 자리에서 몸을 돌려 비상구로 나가 창문을 열었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이 붙는 소리가 마를 대로 마른 내 마음의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길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내뱉으며 15층 아래를 내려다본다. 문득,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예고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뛰어내릴까?'


의도치 않은 눈물이 흘러 입가를 짭조름하게 적시자 내가 불량품이라던 그 교수의 말이 갈라진 마음의 바닥 틈을 비집고 올라와 온 마음을 뒤덮었다.


'맞아. 나 불량품이지. 사회에 나와선 안 됐던 거였어. 그러니 이리도 힘들지.'


다들 별 어려움 없이 일하고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그건 내가 불량품이라서다. 사회 부적응자라서다. 남들 다 하는 사회생활을 이리 어려워해서야 어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난 이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자신에게 되묻는다.


'뛰어내릴까?'


당시 내가 뛰어내리지 못한 것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없이 홀로 남매를 키우신 어머니가 눈에 밟혀서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힘들어만 하다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억울해서다.


이후 10년이 넘게 지나도록 살아오고 있지만 나아졌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살만 하다가도, 일할만 하다가도 불쑥불쑥 '불량품'이라는 말이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해외로 이직을 해서 코로나와 난임을 겪느라 어렵게 결혼한 아내와 몇 년을 떨어져 생활할 때도 그랬다. 힘든 아내를 위해 버텨야지, 아내를 지켜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무너지는 나 자신을 자주 목격했다. 우울, 무기력, 불만, 불안. 안 좋은 단어를 갖다 붙이기만 하면 바로 내 상태였다. 40이 되고 나서도 그랬다. 난 대학시절 '불량품'이었던 졸업반 학생 그대로였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우연히 핸드폰에 뜬 전자책 앱의 광고 알림을 본 후 내 삶이 180도 달라졌다. <마라닉 페이스> 전자책 대여 100% 페이백 이벤트. 책을 60일 대여해 주는데, 대여료를 그대로 돌려준단다.


'대체 마라닉이 뭐야?'


책 표지엔 "오늘을 달리면, 내일이 달라집니다. 달리기, 변화를 일으키는 단 한 번의 결심!"이라는 문구가 쓰여있었고,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대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앉은자리에서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다음 날 새벽 4시, 난 달릴 준비를 마친 채 집을 나서고 있었다.


마라닉 페이스를 읽고 30일 러닝 챌린지 시작한 후 정확히 보름이 지났다. 아직 도전 중에 있지만 이미 난 러닝을 시작하기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불량품? 헛소리다. 난 뭐든지 할 수 있다. 단지 내 속도, 내 페이스가 있을 뿐이다. 인생은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은 내 페이스대로 사는 거다. 내적 자신감은 물론이고 외적인 분위기 마저 달라졌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인상을 쓴 채 일하고, 사람들이 말 걸기 어렵다는 말을 듣던 나였지만 지금은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활기차게 일한다. 회사가 달라졌나? 일이 달라졌나? 주변 사람들이 달라졌나? 아니다. 내가 달라졌다. 달렸더니 달라졌다. 내가 달라지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달리기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노래 중에 '눈의 꽃' 원곡 가수로 유명한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한 것은'이라는 노래가 있다. 한국에선 이 노래의 원작자인 아마자라시 버전도 유명하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날 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내가 죽으려고 했던 이유도 이 노래에 나오는 가사들처럼 너무나 하찮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괭이갈매기가 부둣가에서 울어서, 생일에 살구꽃이 피어서, 신발끈이 풀려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죽음'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모든 생각은 내가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을. 달리면서 알게 됐다. 난 죽을 이유가 없을뿐더러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책 '마라닉 페이스'의 광고 문구는 진실이었다.


달리기, 그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단 한 번의 결심이다.


누군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힘든 상황에 있다면,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달리자. 단언컨대 달리는 순간 당신의 인생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