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닉 30일 러닝 챌린지 24일 차
러닝 휴식일을 맞았지만 어김없이 4시에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 후 스트레칭을 했다. 아직 엉덩이와 허벅지 근력이 부족한 탓에 무릎, 종아리, 발목에 무리가 가고 있어 스트레칭과 폼롤러를 통해 풀어줘야만 다음 날 달리는 데에 지장이 없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샤워를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달리기 시작했지?'
천천히 샤워를 하며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거창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달리기 책을 읽었고, 읽었더니 그냥 뛰고 싶어 졌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작년 연말부터 내 우울감과 무기력감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글도 유튜브도 어느 하나 진전이 없었다. 하고 있는데 진전이 없는 게 아니라 안 해서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연말을 지나 구정 연휴 때 한국을 방문했고 또 2월엔 아내와 아이가 한 달간 내가 있는 중국으로 와서 같이 지냈기 때문에 내 감정을 돌아볼 겨를 없이 어물정 넘어갔다. 자연스레 나아지겠거니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아내와 아이가 한국 친정으로 돌아간 후, 그러니까 지난 3월 1일부터 내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싱크홀처럼 계속 깊어져만 갔다. 그러다 정말 우연찮게 <마라닉 페이스>를 읽게 됐고, 바로 그 다음날 새벽 4시, 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한 달도 되지 않았건만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에 대해서는 5일 차부터 매일 매거진에 글을 써오고 있으니 다시 언급하진 않으려 한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왜 달리기였을까?'에 대한 것이다.
난 MBTI가 INFJ다. MBTI가 내 성격과 성향을 100%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얼추 잘 맞는다. 그리고 I 중에서도 극 I다. 운동은 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 시선이 있음에도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없었으면 좋겠는 그런 성격이다. 그런 점에서 달리기가 안성맞춤이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고, 사람이 없는 시간(나의 경우엔 새벽 4시)에 달리면 아주 가끔 사람을 마주치긴 하지만 거의 마주칠 일이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어떤 장비를 갖출 필요도 없다. 요즘은 좀(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주 조금) 달렸다고 기능성 옷이나 신발, 워치 등 많은 것들에 물욕이 생겨나고 있지만, 사실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땐 운동화 한 켤레, 트레이닝 복 혹은 달릴 때 입을만한 가벼운 옷가지만 있으면 된다.
또한 달리기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헬스, 수영, 테니스처럼 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이 필요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운동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다. 그저 달릴 수 있는 길만 놓여 있으면 된다.
종합하면 이렇다. 사람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에 살면서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 돈을 들여 장비나 옷을 사지 않고 10년 된 운동화와 해질 대로 해져서 브랜드 로고마저 지워져 버린 옷을 입고도 할 수 있는 운동, 어떤 시설에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 바로 달리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를 권하고 싶지만 모두에게 잘 맞는 운동은 없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저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동료나 상대가 필요하지 않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거창한 이유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전업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 오래 앉아서 글을 쓰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더니 글을 쓰며 하루 60개비씩 피워대던 담배도 자연스럽게 끊게 됐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기만 한 운동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