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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ㅛㅏ Dec 07. 2021

또 다른 응급이 있던 응급실.

응급실 마지막 날

4주간의 응급실 근무 마지막 날이다. 올해 가장 힘들었던 4주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응급실 첫 당직을 서는 날 출근길이 그렇게나 멀고 험했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부담감이 너무 커서, 그렇게나 졸리던 출근길이 하나도 안 졸렸다. 인계장을 손에는 쥐고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한숨만 팍팍 쉬며 억지로 발걸음을 떼었던 기억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응급실은 너무나 정신없었고, 처음 해보는 'arrange'라는 낯선 업무에 여러 번 머리가 새하얘졌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주도에 있는 4년차 선생님한테 까지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대뜸 묻기도 했다.

외과에 컨택되는 환자들은 너무나 다양했고, 어떤 순서로 교수님께 노티를 드려야 할지, 어떤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처리할 지, 어떤 일을 깔아두어야 하는 건지 알아가는 과정은 너무 험했다.


 여러 번 미운 소리를 듣기도 했고, 응급실 당직이 하는 일이 없다는 말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 흘려들어야지 하면서도 잘 흘려지지 않는 그런 거 다들 알지 않나. 뭔가 바쁘게 움직이지만, 마음처럼 딱딱 일이 처리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검사 결과만 나오면 바로 수술방에 올릴 수 있는데, 검체가 도중에 빠져 접수가 안 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을 때면 정말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올라온다. 모든 책임은 'arrange' 를 잘못한 응급실 당직 책임이다.

 응급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급하고 예상치 못하는 상황들은 항상 존재했다. 응급실의 위급한 상황이라고 얘길 하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환자를 보통 떠올린다. 그 상황도 응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맞지만, 또 다른 위급한 상황도 있다.


겪었던 일례를 들자면, 가끔 응급실에선 타병원으로 전원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오랜 대기시간으로 인해 환자와 보호자 동의하에 전원을 갔다. 하지만 2시간뒤 화가 잔뜩 난 채 다시 응급실로 돌아왔다. 전원 병원 원무과 직원과 다툼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병원으로 전원을 보냈냐는 어마어마한 컴플레인과 함께 돌아오셨다.

이때부터 이 상황을 다시 바로 잡으려면, 그동안 다른 일은 전혀 하지 못한다. 환자와 전원 병원, 그리고 펠로우쌤과 교수님께 여러 번 통화를 하고 똑같은 상황설명을 세네번씩 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이 시간 동안, 끝나고 해야 할 일들이 2의 제곱 속도로 불어나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이렇게 물한모금 못마시는 당직의가 위급할 수도 있는 곳이 응급실이었다.

 아침에 마지막 날이니까 오늘 엄청 열심히 근무할 거라고 다짐하며 출근했다. 근데 무슨 일인지 오늘은 근무했던 4주간 가장 조용한 하루이다. 분명 또 이렇게 말하면 환자들이 더 몰려오겠지,,, 당직 서본 사람들은 알 거다. 오늘 좀 괜찮네 하면 그때부터가 진짜 당직 시작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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