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쓰는 언어가 곧 당신이 사는 세계다'라는 말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책이다. 항상 궁금해하기만 하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게 되었다. 책은 쉽게 읽히는 문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꽤나 많은 문장들이 쉽게 넘길 수 없게끔 만들었다.
누군가는 나의 평범함을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을 소중히 보고, 또 누군가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을 자신은 평생 배우지 못했다며 감탄할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특별한가”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 페이스북을 시작으로 인스타그램, 스레드. 이 매체들이 성공했던 이유는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이상, 남과 비교하고 본인을 증명해 내려는 욕구는 당연하다. 때로는 그 욕구에 의해 삶의 희로애락을 겪기도 한다. 세상살이의 당연한 감정이자, 겪어야 할 수순이지만 이제 와 드는 생각은 항상 우월할 수도 없고, 항상 특별할 필요도 없었다. 무언갈 성취하는 사람보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더 강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세상과 사람을 보는 나의 시선이 전부다. 타인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1도만 틀어도 희로애락의 끝과 끝을 오갈 수 있다.
독아론이란 무엇인가? 세상에 나만 존재하며, 다른 사람들도 나의 경험 속에만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 영화 트루먼 쇼와 비슷한 개념일까. 아침마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출퇴근길에 반복적으로 오가는 길은 전부 세상이란 연극 속에 세팅되어 있는 무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세상에는 나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다. 독아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실 나란 사람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모두가 인정하는 파란색을 똑같은 파란색이라고 인지하는지도 의문이다. 독아론이 사실이라면 경험하는 주체가 '나'이듯, 세상을 창조하는 주체도 '나'다.
애초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 세계를 지키고 넓히는 일은 언제나 내 선택, 내 용기, 내 행동에서 시작된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규정하는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경험과 내가 앞으로 만들 세계다. 그래서 이해받으려 애쓰기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나의 세계다.” 이 말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규정하는 범위 안에서만 내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는 당신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당신이 펼쳐야 하는 무대라고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주며,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 따라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주체는 '나'다. 나의 인지와 생각, 행동으로 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내가 창조한 피조물들로 인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언제든지 그 세상의 설정을 바꿀 능력이 있다.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를 무대의 가장 큰 비중으로 두기보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지를 무대의 메인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무엇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그것을 표현하는 문법이 우리가 살아가는 윤곽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쓰는 말의 형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번쯤은 자신의 말투, 문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실패했다”라는 문법은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나는 실패를 경험했다”라는 말은 나를 실패를 경험한 사람으로 만들지,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다른 말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해”라는 말은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만, “나는 지금 불행한 상태야”라는 말은 지금은 잠깐 불행하지만,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 모두가 알고 있는 문구인 "'아'다르고 '어' 다르다"처럼 표현의 작은 차이로 그 사람의 생각이 드러난다. 말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도구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따라 그 파급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해가 안 돼서 다시 여쭤보는 건데요."와 "좀 더 이해해 보려고 여쭤보는 건데요." 간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단어와 문장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지할 수도.
이처럼 문법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우리가 어떤 문법을 쓰느냐에 따라 나의 가능성을 연다. “나는 항상 이래”, “나는 안 변해”, “어차피 안 돼” 이런 문법은 나를 가두는 사람으로 만들 것이고, “나는 지금까지는 이랬지”, “이런 면도 있지만 저런 면도 있어” 이런 문법들은 나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문법은 우리 삶의 윤곽을 만들어주는 도구니, 어떤 문법으로 나의 윤곽을 잡을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 본질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좋아야 좋은 말이 나온다는 개념과, 좋은 말을 해야 좋은 사람이 된다는 개념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란 물음과 동일하다. 그 선후를 따지지 말고 본질을 키워 나아가야 한다.
가볍게 읽으려고 시작한 책에서 의외의 생각을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개념은 동일하다란 생각이 든다. 다만 알면서도 실천할 수 없고, 어김없이 실수를 하는 존재가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