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사소한 일들에도 많은 의미 부여를 하기 마련이다. 새해 첫날에 일어난 일들이 올 한 해를 예견해 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일까?
1월 1일은 파견 병원의 첫 출근이자 당직이었다. 파견 병원은 서울에서 KTX로 3시간을 타고 가야 한다. 꽤나 먼 거리 탓에 낮 12시에 당직 근무 교대를 했다. 기차 안에서 파견 병원 인계장을 읽고 동기와 전화로 인계를 주고받았다. 동기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 나는 창원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인계를 했다. 아마 1시간 정도 인계를 했으니 통화하는 와중에 서로가 타고 있는 기차가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안 그래도 타지에 내려가는 마음이 불편한데 아니나 다를까 응급실에 환자가 많다고 했다. 이미 한 명은 입원했고, 다른 한 명은 수술할 수 도 있다고 한다. 12시 창원역에 내리자마자 수술방에서 전화가 왔다. 환자가 이제 수술방 입실한다고 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병원 당직실로 갔다. 캐리어는 풀지도 못한 채 바로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환자 정보는 수술방에서 겨우 파악한 후에 손만 닦고 바로 수술장에 들어갔다. 그렇게 4시간 동안 수술장에서 나오지 못했다.
장이 터져 수술을 했던 할머니였다. 배를 갈라보니 배 속엔 이미 똥냄새가 가득했다. 대장에 구멍 난 부위를 찾자, 그곳에서 대변이 밀려 올라왔다. 썩션기로 똥을 빼내고 빼내도 계속 나왔다. 결국 대장을 30cm 정도 절제한 후 장루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똥을 두 바가지 정도는 퍼냈다. 배속에 있었던 똥냄새는 수술방 전체에 퍼졌고, 코는 이미 마비된 지 오래였다. 깨끗해야 할 복강 내에 대변이 가득했으니 수술 후 감염 위험성이 높았다. 패혈증으로 빠질 수 도 있어 중환자실로 입실시켰다.
수술이 끝난 뒤, 이제는 밀린 병동 환자 콜들을 처리해야 했다. 여기저기 배가 아팠고, 열이 났었고, 소변이 잘 안 나왔었던 병동 환자들 처방을 하나하나 냈다. 그러다 보면 이제 응급실 환자들 콜이 중간중간 온다. 병동 환자들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응급실 환자들이 기다려 주진 않는다. 병동 처방을 내는 와중에 응급실 신환을 보고 교수님께 노티를 드린다. 맹장염, 담낭염 등 외과적 결정이 필요한 환자들을 주로 본다.
병동과 응급실을 오가는 사이 중환자실에 상태가 갈수록 안 좋아지는 환자 연락을 받았다. 한 분은 수술 후 폐가 안 좋았던 환자분이었는데, 피검사 상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수치가 너무 좋지 못했다. 기관 삽관을 하겠다고 교수님께 노티 드리고 마취과 선생님과 같이 그 환자를 안정시키는데도 한 시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중환자실 처방과 인공호흡기계 세팅은 당직의 바쁨을 배가 되게끔 만들었다.
한 분이 호흡기 문제였다면, 아까 수술 후에 입실시킨 할머니는 혈압이 자꾸 떨어졌다. 승압제를 쓰고 수액을 줘도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한 밤 중에 중심정맥관을 잡고 수액과 승압제 속도를 더 높였다. 그렇게 30분 단위로 피검사 결과를 보며 안정되는 것을 보고 다시 당직실로 돌아왔다.
당직실로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넘었다. 풀지 못한 캐리어는 그대로 있었다. 새해 첫날이 어떻게 갔는지 인지도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갔다. 병동에서 새 이불을 받아와 당직실에서 중간중간 새벽 콜들을 받으며 남은 밤을 보냈다.
어제가 올 한 해를 예견해 주는 하루였다면, 2022년은 일복이 정말 많은 한해인가 보다! 하루 동안 풀지 못한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1월 2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