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섬망 Care와 Cure.

care와 cure의 차이

by 글쓰는 외과의사

병원은 'CUre'가 본질인 곳이지만, 때로는 'CAre'가 더 중요한 곳이다. 치료의 의미인 'CUre'와 돌봄의 의미인 'CAre'가 함께 이뤄지는 곳이 병동이고, 병원이다. 단어에서도 하나의 알파벳 차이이듯 의미적인 면에서도 한 끗 차이이다.

금요일은 당직이었다. 정규 업무를 7시까지 빠듯하게 끝내고 식당에 내려갔다. 메뉴는 감자탕이었다. 저번 주부터 먹고 싶었던 메뉴였다. 아니나 다를까 감자탕을 한입 뜨기도 전, 10층 서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달 한 달 동안 같이 일했던 병동인 탓에 10층 서병동은 반갑지만, 당직 콜 자체는 반갑지 않다. 그래서 항상 당직 시간 10층 서병동 콜에는 양가감정이 든다.

받아보니 병동에 섬망(delirium) 환자가 acting out(예상치 못한 난폭한 언행이나 행동)을 한다고 지금 좀 와주실 수 있느냔 전화였다. 목소리에서부터 급하단 걸 깨달았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당직 시간에 여러 병동을 같이 담당하는 전공의들을 배려해주신다. 웬만큼 급한 게 아니고서야 지금 와달라는 말은 잘 안 하신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바로 병동으로 올라갔다. 직원 식당도 문 닫을 시간이었어서 아주머니께 금방 내려올 거라고 식판만 치우시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올라갔다. 그만큼 감자탕은 먹고 싶었다.

10층으로 올라가니 스테이션엔 아무도 없었다. 보통 스테이션엔 항상 중앙 간호사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이 계신다. 스테이션에 한 명도 없다는 건 병실에 문제가 있긴 있다는 것이었다. 걸음은 더 빨라졌고 웅성이는 병실을 찾아들어갔다. 젊은 남자 환자가 거의 반쯤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주변에는 보안요원, 간호사 선생님들 5-6분이 억지로 환자를 붙잡고 있었다.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대는 바람에 겨우 손과 발을 잡고 있었다.

수술 후 섬망(Delirium) 환자였다. 섬망은 우리 몸이 어떤 변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시간, 장소, 공간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고 의식이 변화하는 현상이다. 보통 감염이나 약물, 수술 등의 신체적 변화로 올 수 있다. 수술도 치료를 위한 행위이긴 하지만 일종의 우리 몸에 변화를 주고 damage를 입히는 행위이다. 우리 몸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병실이라는 장소와 바꿔 입은 환자복, 수술 후 달고 있는 여러 장치들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만하다.

섬망 증상이 있는 환자들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자신이 말한 내용을 잊어버린다. 주로 밤에 증상이 나타난다. 증상이 경미하면 다시 알려드리면 바로 이해한다. 하지만 증상이 심한 환자들은 acting out을 한다. 병원을 나가려고 하거나, 보호자나 의료진을 폭행하는 사람도 있다. 수술 후에 달고 있는 수액 라인이나, 배액관 등을 잡아 뽑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럴 때가 가장 무섭다. 중심정맥관이 뽑히고 뱃속의 관이 뽑혀나가기 시작하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 환자가 흥분하더라도 달고 있는 라인과 배액관만 온전하면 된다.

10층 환자도 증상이 심하였다. 이미 소변줄은 뽑혀져 나가 있었고 침대에는 소변과 피가 뒤섞여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침대 주변은 움직일 때마다 첨벙였다. 바닥엔 물병도 뒹굴고 있었는데 소변인지 물인지 분간되지는 않았다.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라인들은 다 뜯겨 있었고, 모니터에 활력징후는 측정되지 않았다.

일단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환자한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시냐고, 지금 말씀해주시면 해결해드리겠다고 했다. 환자는 가운을 입고 있어도 의사가 맞는지 되물었고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명찰을 손에 쥐어드리며 당직 의사 맞으니까 말씀해보시라고 달랬다. 그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 시작되었다. 분명 이틀 전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여기서 수술을 받은 적이 없고, 오늘 퇴원 예정이라고 했다. 왜 본인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여기가 삼성병원은 맞는지. 병원에서 나를 이렇게 못 나가게 하면 되는지. 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다 이해한다는 척을 하며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환자 말하는 사이사이마다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order를 드렸다. 환자가 말을 하는 동안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 끊기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아 그러셨어요? 로라 0.5A iv로 주세요. 아 오늘이 원래 퇴원 예정이셨다고요? 할돌 반 앰플 im으로 주세요. 지금 누님분은 어디 계세요? 억제대 체스트도 같이요." 이렇게 환자 말을 듣는 것과 order를 번갈아 얘기하며 경청자의 모드와 처방내는 모드를 왔다 갔다 했다. 다행히 환자는 본인이 말하는 것에 심취해 손과 발에 억제대가 채워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렇게 모든 약이 들어갔고 억제대를 마지막 손까지 채우고 나서야 이제 좀 안심이 되었다.

문제는 빠진 소변줄이었다. 신장 이식 수술 환자라 소변 양 체크가 중요했다. 빠진 소변줄이 다시 들어가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소변줄엔 끝에 풍선이 달려있어 억지로 잡아 뽑을 경우엔 요도를 다 찢어먹을 수도 있다. 상처가 난 뒤 협착된 요도로 다시 소변줄을 넣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소변줄도 다시 들어갔고 그제야 아까 투약된 약들의 효과가 나타났다. 환자는 잠잠해졌고 이내 잠들었다.

식당에 다시 내려가니 식당 입구의 불은 다 꺼졌다. 다행히 식판은 그대로였다. 금방 돌아온다 해놓고 한 시간이 지나 돌아왔으니 남겨주신 것만 해도 감사했다. 감자탕은 다 식었고 한바탕 신경이 곤두섰다 돌아온 터라 입맛은 없었다. 나 때문에 식당 정리가 늦어질까 대충 먹고 빨리 나왔다.

다행히 환자는 다음날 멀쩡했다. 본인이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섬망의 가장 첫 번째 치료는 'CAre'이다. 가까운 가족이 옆에서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첫 번째이다. 간호사 선생님도 라운딩 때마다 여러 번 'CAre'를 해주신다. 무슨 수술받았고 여기는 어디고 지금 무슨 약을 드리는지 계속 알려드린다. 그리고 어제도 그랬듯 섬망이 오더라도 환자는 본인의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이때만큼은 'CUre'가 우선이 아니다. 의사는 처방을 내며 'CUre'에 신경을 쓰지만, 비교적 환자와 가까이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CAre'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 어제는 환자의 발길질에 맞은 간호사 선생님도 계셨다. 'CAre'가 'CUre' 보다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환자와 보호자는 'CUre' 만큼이나 'CAre'에 감사해한다. 그리고 더 오래 기억한다. 어쩔 땐 'CUre'결과에 상관없이 'CAre'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되는 곳이 병원이다.

감자탕은 제대로 못 먹었지만 'CUre'와 'CAre'의 간극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당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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