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었던 사망선고.

모두가 퇴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

by 글쓰는 외과의사


병원엔 많은 사람들이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한다.


하루 이틀, 일주일 내로 짧게 입원하고 퇴원하시는 분이 있는 반면, 몇 달씩 장기 재원 후 퇴원하는 환자도 있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노부부는 "겨울에 입원해서 봄에 나가네, 그래도 날이 풀려서 다행이지?"라며 서로 웃으셨다. 건강하게 퇴원하시는 뒷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셨지만 오랜 입원 기간으로 힘드셨을 생각에 마음 한편이 짠했다.


병원의 환자들 모두가 입원을 하고 늦더라도 이렇게 퇴원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입원만 존재하고 퇴원이 없는 환자도 있다.


이틀 전 밤에 급하게 중환자실로 내려온 환자였다. 이제 갓 환갑이 지난, 병원 나이론 너무 젊은 환자였다. 수술 후 생긴 출혈이 원인이었다. 췌장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간혹 수술 후 가성 동맥류로 인해 복강 내 대량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드문 일이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발생 시엔 초응급상황이다.


이번 환자도 갑자기 발생한 동맥 출혈이 원이이었다. 활력징후는 갈수록 불안정해졌고, 복강 내 배액관으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배액관을 비우고 비워도 피가 가득 찼다. 환자분은 갈수록 의식을 잃어갔다. 계속 깨우고, 수혈을 하면서 승압제를 달았다. 출혈 포커스를 찾고 지혈을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겨우 바이탈을 유지하면서 CT도 찍지 않은 채 바로 인터벤션(Intervention) 실로 갔다. 시간이 그만큼이나 없었다. 인터벤셜 실에서는 영상으로 혈관 내 출혈 부위로 접근해 피를 막을 수 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영상의학과 선생님들이 바로 환자의 혈관을 찾아 들어갔다. 출혈 포인트를 찾고 지혈술을 시행하려는 찰나 갑자기 심정지가 발생하였다. 승압제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심장이 힘을 다한 것이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되고 승압제를 여러 번 투여하고 호흡을 불어넣었다. CPR을 하면서 환자의 수술 부위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 배속은 이미 피가 가득했다는 의미였다. 다행히도 CPR 후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었고, 다시 한번 인터벤션을 시행하였다. 그러다 다시 심정지가 났고 또다시 CPR 후 심장 기능이 돌아왔다. 세 번째로 인터벤션을 시행하였지만 이미 고농도의 승압제와 CPR 로인해 출혈 포커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의심되는 부분에 지혈을 한 후 바로 수술방에 들어갔다. 새벽 1시에 배를 열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미 망가진 혈관들로 인해 출혈을 완벽히 잡을 수 없었다. 교수님은 최대한 지혈을 할 수 있는 만큼 한 후 수술방을 나오셨다.


인터벤션팀 4-5명, 수술방 마취과와 수술팀 5-7명, CPR 팀 10명. 밤사이 수많은 의료진이 노력했지만 환자의 상태는 불안정했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환자 보호자에게 또 한 번 심정지가 발생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임을 설명하고 연명의료 중단 행위에 관련된 동의서를 설명드렸다. 보호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아버지를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면회도 제한되었다. 한 분씩 차례로 면회를 시행했다. 설명을 덤덤하게 들으시던 보호자분들도 환자 앞에선 무너지셨다. 아버지의 차가운 손으로 아버지 핸드폰 지문 인식을 푸는 아들의 모습에 내 마음이 시렸다. 보고 있기가 힘들어 괜히 다른 환자들을 보러 갔다.


그렇게 다음날이 지나고, 가족들 모두 동의하에 의미 없는 연명 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가족들 모두가 모여 환자의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포화도는 잘 측정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조금씩 유지되던 맥박수는 조금씩 느려졌다. 자꾸만 길어지던 심전도 리듬은 결국 일직선이 되었다.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는 것이다.


환자가 가는 동안 가족들은 아빠에게 마지막 말들을 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아빠가 우리 아빠여서 너무 행복했다고, 그래도 왜 이렇게 일찍 가냐고.. 그렇게 중환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분명 환자는 그 말들을 다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결혼한다던 아들 결혼식도 위에서 꼭 지켜보실 것이다. 도저히 사망선고는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아 동기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정리가 되고 난 후 어떻게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몰랐다. 사흘간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로 중환자 실 앞에서 밤을 지새운 보호자들이었다. 이제 아버지를 보낸 분들에게 감히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마실 것들을 사다 드리는 거 외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자괴감에 눈물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아쉬운 게 너무 많았다. 그때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옮겼더라면, 조금 더 침착하게 대처했더라면. 자꾸만 아쉬운 상황들이 떠올랐고 나의 부족함에 너무나 힘겨웠다. 일기장엔 보호자분들에게 못다 한 말로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잘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그렇게 안 보내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비워냈지만, 헛헛한 마음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모두가 퇴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