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96통의 전화가 왔다. 당직도 아니었다. 퇴근 전까지 오는 콜이 100통 가까이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들 하는 통계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새벽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총 13시간 동안 10분에 한 통씩 전화를 받은 셈이다.
'10분당 통화 한 통은 괜찮지 않나?'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상당히 괜찮지 않다.
우선, 뭘 하려고 하면 전화가 온다. 10분 이상 걸리는 일을 하면 무조건 전화가 오는 것이다. 식사 도중에 전화가 오는 것은 물론이며, 화장실에 있는 와중에, 샤워를 하는 와중에 전화가 온다. 밥을 먹다가, 변기에 앉은 채 전화를 받는 것은 이제 불편하지 않다. 다만 샤워실은 조금 어렵다. 발가벗은 채로 손가락의 물기만 닦고 병동 전화를 받다 보면, 거울 속 내 모습에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쁜 일은 겹쳐 오듯, 전화가 올 때는 몰려서 온다. 전화를 끊고 10초도 안되어 다시 전화가 온다. 심지어 전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병동에서 전화가 오고 있다는 알림이 뜬다. 들고 있던 전화기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든다. 겹쳐 오는 전화들에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하려 했는지도 까먹게 된다.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전화 녹음은 필수다.
어릴 적 엄마는 항상 내가 공부하려고 일어날 때 '이제 그만 공부해야지.'라고 하셨다. 이때의 기분은 다들 알 것이다. 가끔 병동에서 온 전화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처방 내려고 하는 순간 처방 내달라는 독촉 전화는 어릴 적 기억까지 회상시킨다.
이런 이유들로 전화를 받을수록 목소리는 날카로워진다. 이중인격자처럼 오후로 갈수록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목소리로 불쌍한 척, 화난 척, 바쁜 척 모든 수법을 써보았지만 전화는 줄어들지 않는다.
한 가지 웃픈 것은 병동에서 오는 전화에 힘없이 받다가, 갑자기 걸려오는 교수님 전화에는 목소리가 변한다는 사실이다. 통화하는 상대방에 따라 나의 목소리가, 나의 태도가 바뀐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그리곤 한결같은 사람이 되자는 반성과 함께 다음에 걸려오는 병동 전화에는 좀 더 정제된 목소리를 내본다. 스트레스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컨트롤 하기엔 아직 한참 부족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