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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ㅛㅏ Apr 19. 2022

슬의생의 이식외과와 현실판 이식외과.

전공의 일기

이번 달은 이식외과 파트이다. 이식외과에서는 주로 이식 후의 환자들을 본다. 이번 한 달 동안 간이식 환자들만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들어 가장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슬의생의 조정석이 역할을 맡았던 파트였다. 쾌활한 조정석 덕분인지 슬의생의 이식외과는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신기하게도 우리 병원의 이식외과도 상당히 분위기가 좋다. 그리고 외모는 매우 다르지만 조정석과 캐릭터가 똑같은 교수님도 계신다.

먼저 이식외과에 대해 얘길 하자면,,



1. 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간이식을 받는다. 간암으로 간이식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담도질환, 간염으로 인한 간부전 등 간이식이 필요한 경우는 많았다. 개중에 괜히 더 안타까운 경우는 술로 인한 간경화 환자들이었다. 30-40대 젊은 나이의 알콜릭 간경화 환자들을 보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로 고생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몇 환자들은 회복 후에 다시 술을 마시곤 응급실로 실려온다. 이런 경우엔 응급실 기록을 보다 보면 한숨부터 먼저 나온다. 그래서 퇴원 전 여러 번 당부해도 부족한 것이 금주 약속이다.

2. 간을 기증해주는 기증자도 다양하다. 비교적 건강한 자식들이 기증해주기도 하고, 형제, 자매가 기증을 해주기도 한다. 가족이 아닌 친구나 지인의 기증인 경우에는 절차가 복잡하다. KONOS라는 장기 기증 담당 기관에서 환자와 기증자의 이전 관계에 대한 검증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수혜자, 기증자의 관계와 속사정을 알게 되면 치료 과정에서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딸이 준 간인데 더 힘내서 회복하셔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로 괜히 서로에게 의미 부여를 하기도 한다. 물론 생전 만난 적 없는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는 경우도 있다.

3. 이식 환자들은 대개 병원 생활이 상당히 길다. 기본적으로 간이식을 하게 되면 입원부터 퇴원까지 3-4주 정도가 걸린다. 그 기간도 잘 회복하는 경우에 한정된다. 수술 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면 몇 개월씩 병원에 있는 경우도 많다. 회복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엔 입퇴원을 반복하며 여러 해를 보내는 분들도 계신다. 퇴원 후 간이식을 집도하신 교수님의 외래는 5년, 10년 꾸준히 다니게 된다. 이전에 있었던 병원의 간이식 담당 교수님은 간이식을 받은 환자 가족들과 bonding이 상당히 끈끈했다. 같이 등산을 다니시기도 했고, 소통이 가능한 커뮤니티를 만드시기도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환자들과 만나면서 가족 같은 친근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로 병동에서 이름만 말하면 알정도의 named 환자분들도 계신다. 길어지는 치료 기간에 환자와 보호자의 답답함이 의료진에게 불만으로 표출될 때도 있다. 말투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날이 서있고 가끔은 말없이 녹음을 하시는 분도 있으시다. 이런 경우엔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된다.

4. 지금껏 주치의를 맡았던 모든 과를 통틀어 가장 바쁜 과였다. 기본적으로 환자수가 많기도 했지만, 환자 한 명당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긴 재원 기간 탓에 알아야 할 히스토리도 한가득이었다.(환자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는데만 일주일이 걸렸다는..) 간이 안 좋아지면 신장 기능이 뒤따라 안 좋아질 수 있어 약 쓰는 것도 신경 쓰였다. 그리고 대부분 면역 억제제를 쓰고 있어 열나는 것도 더 주의 깊게 봐야 했다. 특히나 소아 간이식 환자 한 명은 성인 간이식 환자 5명을 처방내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수술방에 들어갔다가 처방을 내고, 필요한 시술의 협진과 경과기록을 쓰다 보면 퇴근시간은 훌쩍 넘긴다. 밤 9시-10시에 일이 끝나고 다음날 출근할 생각을 하면, 오히려 그 생각을 하는 것이 더 피곤했다. 차라리 당직인 날이 일하기엔 마음 편하다. 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해도 되다는 생각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첫 2주 동안 조금씩 적응한 덕분에 아마 남은 2주는 비교적 더 수월할 것이다. 그래도 하루하루 타이트한 스케줄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전공의여서 더 바쁜 것은 아니었다. 펠로우 선생님, 교수님들은 더 바빠 보였다. 갑자기 생긴 뇌사자의 적출 수술이나, 응급실의 환자들의 on call 담당은 다 전문의 선생님들 몫이었다. 생각해보면 슬의생에서도 번번이 퇴근길 차를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엊그제도 춘천 도착해서 병원 사정으로 춘천 음식 구경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신 선생님도 계셨다. 드라마가 항상 허구는 아니다.



며칠 전 교수님께서 왜 본인이 이식 파트를 선택했는지 말씀해주셨다. 수술로 암의 진행을 방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식은 환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삶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하셨다. 그리고 환자를 보면서 얻는 직업적 뿌듯함이 상당히 크지만, 그만큼 가족들을 많이 못 보는 아쉬움도 있다고 하신다. 그날도 교수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이 올라가면서 아내분에게 미안하다고 애기들이랑 먼저 저녁 먹으라고 하셨다.

슬의생의 이식외과와 현실 속 이식외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르다면 의사들의 외모 정도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힘드실수록 오히려 더 분위기를 살리면서 쾌활하게 회진을 도시는 교수님들은 아주 가끔 조정석보다 훨씬 더 잘생겨 보이기도 한다.


2년 뒤 전문의가 되고 어느 파트를 선택할지, 어떤 인생을 선택할지 갈수록 고민이 되는 2년 차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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