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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외과의사 Jun 11. 2022

속 터지던 미세 술기 코스

Level up 하는 과정은 항상 시작이 답답하다

외과 교수님들 대부분이 본인의 루뻬가 있으시다. 루뻬란 프랑스어로 Loupe에 해당하는 말로 magnifying glass를 의미한다. 수술 부위를 확대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수술의 종류에 맞게 루뻬마다 배율도 다르다. 보통 성형외과나 신경외과처럼 정교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 고배율의 루뻬를 사용한다.

루뻬가 필요한 수술은 수술 기구부터 작다. 실은 너무 얇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이고, 바늘도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찾을 수 없을 만큼 작다. 포셉은 실이나 조직을 잡는 용도로 원래 끝이 뭉툭한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미세 수술에 필요한 포셉은 얇다 못해 끝이 뾰족하다. 하지만 루뻬를 쓰고 확대해서 보면 수술 기구들이 그렇게 클 수 없다. 루뻬를 쓰시고 두세 시간 연달아 수술을 하시는 교수님들이 힘드실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직접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신청한 미세 술기 교육은 혈관 봉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었다. 교육의 마지막 코스는 닭발의 혈관을 연결하는 것이다. 닭발을 먹을 줄만 알았지, 생 닭의 발에 있는 혈관을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혈관들이 얼마나 얇은 지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얇디얇은 혈관을 잇기 위해선 현미경이 필요했다. 그리고 닭발을 직접 만지기 전 현미경과 미세 수술 용 수술 기구들에 익숙해지는 과정도 필요했다. 먼저 혈관과 비슷한 재질에 연습을 시작했다.

학생 때 병리과 수업 실습 시간 이후에 현미경을 잡은 건 5년 만이었다. 병리 슬라이드도 대부분 전자 현미경을 사용했기 때문에 눈으로 직접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낯선 일이었다. 처음 잡아본 8-0 나일론 실은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았다. 팔에 나는 솜털 정도의 굵기가 되려나. 바늘을 잡으려면 현미경 시야 아래에서 잡아야 했다. 현미경에서는 실도 바늘도 굵직굵직했다. 하지만 확대된 배율만큼 시야는 좁았다. 내 손이 어디 있는지, 바늘과 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감이 안 왔다. 손만 살짝 움직여도 바늘과 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현미경에 눈을 댄 채로 장님처럼 손을 휘저으며 겨우겨우 찾고 초점을 맞추었다.

한 땀 한 땀이 오래 걸렸다. 적당한 위치에 바늘을 위치시키는 것부터, 적절한 길이의 실을 붙잡고 타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적합한 위치에서 컷(Cut)을 해야 했다. 누구나 느껴본 적이 있겠지만 사실 '적당한, 적절한, 적합한' 이 단어들이 가장 어렵다. 과거 데이터와 경험에 기초해 스스로가 판단 내린 기준이 남들이 보기에도 적당하고, 적절하고, 적합해야 한다. 그래서 수처(Suture)를 하는 과정은 여러 번 해보고 공부하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눈의 위치를 고정시켜야 하다 보니 자세는 정자세로 앉아있어야 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현미경과 눈의 위치는 어긋났고 화면은 금방 깜깜해졌다. 그렇게 여러 번 실을 놓치고, 엉뚱한 곳을 찌르다 보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온다. 순간순간 현미경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도 든다. 다 묶은 실이 다시 풀려버릴 때면 소리가 저절로 내질러진다. 현미경에 앉은 두 시간 동안 주체할 수 없는 답답함에 외과를 선택한 게 잘한 일인지도 의문스러웠다. 속에서 불타고 있는 나와 반대로 옆자리 이비인후과 3년 차 선생님은 차분했다. 나보다 1년 더 수술장에 있었던 경험치에서 나온 차이인가.. 아니면 나처럼 속에서만 끓어오르시는 건지...

시작하면서 촬영을 눌렀던 비디오는 다 찍고 나니 2시간이 흘러있었다. 체감상 20-30분 연습한 느낌이었지만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당직 후 추가로 2시간을 더 집중했으니 퇴근길 터덜터덜 발걸음은 기본이다. 슬의생 채송화 선생님 배역을 보면 자주 목을 주무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루뻬를 쓰시고 수술하시는 교수님들의 고충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미세 술기 코스였다.

이런 과정이 곧 level up을 하는 과정인 건지.
외과 의사로 앞으로 어떤 파트에서 어떤 수술을 하게 될지 궁금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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