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전공의 Jan 29. 2023

걱정이 현실이 되는 이유 in 리얼리티 트랜서핑


영성과 끌어당김에 눈을 뜨게 해 준 책이 '리얼리티 트랜서핑'이었다.


트랜서핑을 접하고 딱 1년. 그간 깨닫고 실천하기를 반복하며 '트랜서핑, 끌어당김'을 알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 번 더 복습하는 차원에서 2회독. 다시 읽어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구절들에 나름의 생각을 덧붙여, 부정적인 생각이 현실이 되는 이유에 대해 답을 구하였다.




사람들의 사념 에너지에 의해 그 특질이 형성된 모든 구조체를 펜듈럼이라 한다. 펜듈럼은 집단적인 상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지자가 많을수록, 같은 생각들이 더 많이 모일수록 강해진다. 대개 부정적인 펜듈럼에서 그 에너지가 강하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에는 부정적인 뉴스가 더 많이 떠돈다. 안 좋은 사건 사고에 같이 동조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여럿 보았지만, 좋고 훈훈한 뉴스에 한 목소리로 칭찬했던 경우는 드물었다.


부정적 펜듈럼이 인간에게 에너지에 접근하려고 할 때, 가장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인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은 펜듈럼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불평을 하면서 펜듈럼의 주파수에 맞춰 부정적인 에너지를 세상으로 방사한다. 펜듈럼에 동조하게 되면 본인이 불평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다.


펜듈럼이 잡아당기는 가장 팽팽한 줄은 인간의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뭔가를 피하려는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두려워하면 두려워할수록 그것을 갖게 될 위험은 더 커진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원하지 않는 것에 맞서서 싸우는 것은 사실, 바로 그것은 인생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걱정하고, 피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 일은 내게 다가온다.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일이다. 두려움은 펜듈럼이 가장 잠식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사념 에너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불만과 걱정, 두려움이 왜 실제로 사건, 사고로 일어나는지 알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다음과 같다.


생각이 부정적인 감정의 대상에 매여 있으면 사념 에너지가 특정 주파수에 고정되고, 그러면 인간은 펜듈럼에 붙잡혀서 인간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이 널려 있는 해당 인생 트랙으로 옮겨가게 된다. 펜듈럼에 붙잡히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해당 인생 트랙으로 옮겨가는 것. 부정적인 펜듈럼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순간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 트랙이 변한다. 아예 다른 레일로 옮겨타게 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불평과 불만, 두려움이 반복되는 인생 트랙이 갇힐 수도 있다.


그러면 펜듈럼에 휘둘리지 않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삶에서 원치 않는 일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념 에너지를 사로잡고 있는 펜듈럼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펜듈럼을 그냥 지나가게 하거나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은 '받아들임'이다. 여기서 '받아들임'이란 걱정의 대상, 두려움의 대상, 불만의 대상을 껴안아 자신의 일부로 만들란 말이 아니다. 만물이 그 자체로 존재할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담담하게 지나쳐 가라는 뜻이다. 삶에서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무시하면 된다. 라디오에서 방송을 듣는 것처럼 원치 않는 방송은 다른 주파수로 채널을 돌려라. 그 방송 자체가 없어지기를 고대하는 게 아니다. 단지 다른 채널로 돌릴 뿐이다.


무엇이 펜듈럼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까?


'비어있음'이다. 펜듈럼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내가 펜듈럼이 원하는 에너지를 가지지 않고 비워져 있으면 펜듈럼은 무엇으로도 나를 붙잡지 못한다. 그리고 펜듈럼에 동조해 주는 척하면 된다. 다음은 책에서 제시한 사례이다.


예를 들어, 열성적인 상사가 당신에게 일을 잔뜩 맡기면서 정확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줄 것을 강요한다. 당신은 그 일을 그런 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방어를 위한 논쟁을 벌인다면 상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에게 복종을 요구할 것이다. 당신은 이미 결정 난 일에 반항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논쟁하기보다는 정반대로 해야 한다.
상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귀 기울여 듣고, 그의 모든 말에 동의해 줘라. 펜듈럼이 최초의 충동을 소진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런 다음 그와 함께 부드럽게 일의 세부사항을 논의하기 시작하라. 이것은 당신이 상사의 사념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그의 주파수로 방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충동에는 아무런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았으므로 당분간은 잠잠히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아는 척하지 말라. 뭐든지 긍정하고 논쟁을 피하라. 단지 그의 조언을 구하라.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잘할 수 있을지 물어보라.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 펜듈럼을 따라 함께 흔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 그 게임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깥에서 그것을 관찰하는 것처럼 한다.
그러면 상사의 펜듈럼은 게임에 완전히 몰두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흔들리지 않고 한 발 뒤에서 관찰하고 있으면, 당신을 향하던 그 부정적인 펜듈럼 에너지가 다른 해결책이나, 다른 사람에게로 방향을 바꾸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한 발 뒤에서 펜듈럼에 동조해 주는 척, 같이 빠지지 않는 방법은 '알아차림'이다. 펜듈럼임을 알아차리고, '유머와 창조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자. 짜증을 내는 상사를 꿱꿱거리는 펠리컨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시끄러운 펠리컨 한 마리를 관찰하는 마음으로, 그 소리에 응답해 주다 보면 펠리컨은 알아서 잠잠해지거나 자리를 옮기게 된다.




개인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한 발 떨어져 인지하는 것만 터득해도 삶이 훨씬 수월해진다. 최근 다시 본 영화 '어바웃 타임'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주인공은 힘들고 감정이 어려운 날에 다시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한 발 떨어져 다시 하루를 보내본다. 다시 보내는 하루는 생각보다 즐길 것이 많았고, 감사할 것이 많은 하루였다. 다만 인지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시간을 돌렸던 주인공은 결국 시간을 더는 돌리지 않게 된다. 일어나는 사건 자체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년 전, 책을 읽고 삶에는 관망하기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을 때 누군가 그랬다. 그러면 삶을 충분히 즐기지 않는 것 아니냐고, 그 상황에서 감정을 충분히 누려야 세상이 더 재밌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냐는 물음에 사실 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깨달았다. 한 발짝 떨어져 나를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었다. 자칫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발견하지 못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방법이 '관망하기'였다. 그리고 그 과정이 '알아차림'과 '받아들임'이었다.



책도 영화도,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 2022 한 해 독서 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