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이야.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인정을 원하죠.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느끼기도 하니까요. 사랑받고 싶은 끝없는 욕구와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집요한 두려움,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과 인정을 원해요. 사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누군가의 판단 아래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대표적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각종 SNS의 좋아요를 예로 들 수 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는 좋아요, 댓글과 같은 지수에 신경 쓰지 않아. 그것들은 내게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누가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누가 자신의 게시물을 보았는지 궁금해하죠. 좋아요가 많이 눌리고, 댓글이 많이 달린 컨텐츠는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었거나 도움이 되었거나 꽤 멋진 것이거나 공감되는 것이겠죠. 어쩌면, 이는 가치를 나타내는 직관적인 수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게시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혹은 없는지 말이죠. 사람이라면 자신이 공유한 작품에 대한 평가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혼자만 좋자고 할 거면, 굳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공유공간에 그런 컨텐츠를 올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누군가의 판단 아래 있지 않아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고, 별로라고 느끼는 것이라면 별로인 거예요.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선택으로 대상의 가치는 정해져요. 물론, 사회적으로 정해 놓은 물질의 가치 정도를 제외하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가치 판단에 대한 신념을 조금 더 확고히 할 필요가 있어요. 개인적인 가치 기준을 더욱 각색할 필요가 있어요. 좋은 이유와 싫은 이유, 멋진 이유와 아쉬운 이유 등 어떤 가치 판단의 이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하는 거죠. 쉽게 말해, 가치 판단 기준에 대한 확고함이 필요해요.
이 과정을 통해 호불호가 있는 사람이 되겠지만, 이는 분명 좋은 신호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자신의 가치 판단 기준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우리의 줏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온 힘을 다 해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고, 아쉽다고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 지점을 명확히 하여 어느 정도 타협하고, 수정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그러니까, 호불호가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확실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겠죠. 애매한 사람처럼 답답하고, 이도 저도 아닌 사람처럼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보단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괴짜가 되는 것이죠.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보다 미워하는 이가 생길까 걱정이 되겠지만, 결국 그러한 사람이 되면 모든 걱정은 사라지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선명해질 거라고 믿어요.
마치, 자욱한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그 어떤 어려움이 두루뭉술한 안개처럼 찾아오더라도 자신만의 가치 판단 기준이 명확하게 있다면, 그것은 안개를 걷히는 횃불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