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둠은 얼마나 짙은 검은색이었던 걸까
어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하루, 평소처럼 풀리지 않는 작업에 답답한 마음이 가득하다. 매번, 마음먹은 목표를 제대로 끝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한 번 목표한 거리를 달려보기로 한다. 여의도부터 한강을 한 바퀴 돌아 집까지 달려오는 것이다.
8km쯤 달리니, 잠수교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잠수교를 달려본다. 이 다리 위에선 한강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달리는 것은 꽤나 낭만적이다. 오늘은 그 낭만을 느끼고 있다.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진 말이다.
땀이 흐른다. 다리 중간에 분주해 보이는 움직임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한 발 한 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강 위에 119와 해경 보트가 나란히 떠있다. 꽤나 바람이 많이 부는 탓인지, 작은 배는 이리저리 바람에 제 몸을 못 가누고 방향을 튼다.
바람이 다시 한번 세차게 불자, 보트가 반 바퀴 몸을 크게 튼다. 기여코, 보고야 말았다. 차가운 한강에서 한 중년이 싸늘하게 굳어버린채로 들 것에 몸이 고정된 채로 보트 위로 건져지는 것을. 내가 본 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하기엔, 구조 대원의 다급한 심폐소생술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온다. 중년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다급하게 명치를 누르는 구조대원의 손길이 지켜보는 내 마음도 같이 찌르는 듯하다. 그렇게 보트는 어디론가 빠르게 떠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부터 쭉, 멍하니 달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앞만 보고 달렸다. 내 눈앞엔 죽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던 것일까. 그 남자의 아픔은 어떤 크기와 속도로 진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이토록 차가운 한강 위로 몸을 던져야만 했을까. 그는 어떤 아픔 삶을 살고 있던 것일까. 그의 세상은 언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일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집는다. 멍하니 달릴 수밖에 없도록 생각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다. 서늘한 기운이 내 어깨에 손을 얹어 뒤에서 나를 감싸 안는 듯하다. 무섭다. 그래서 더 빠르게 달려본다. 이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보려 앞만 보고 달린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사람은 태어나 결국 죽는다. 싫든 좋든 죽는다. 우리는 그렇게 흙이 되고, 가루가 되어 세상의 양분이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죽어라 살고 있는 걸까..?”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돈과 명예에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가는 걸까. 왜 세상엔 어둠이 존재하는 것인가. 왜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는 것인가. 빛이 더 밝은 빛으로 그늘진 어둠을 밝게 비춰주면 안 되는 것인가?
..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해본다. 그의 아픔과 어둠이 얼마나 깊었을지 한 번 생각해보며, 애도를 보낸다. 세상을 떠난 그곳에서는 차가운 한강물이 아닌,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들판 위에서 이전의 아픔을 잊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어둠에 감출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기엔 부끄러운 구석이 있으니, 어둠에서는 그를 조금 더 쉽게 감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일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새까맣게 어두운 밤이 자신의 어둠을 가릴 수 있다고, 눈물을 눈물로 가릴 수 있다고, 슬픔으로 슬픔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낮이 아닌, 자신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는 어두운 밤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지독한 어둠이 우리의 어둠 정도는 쉽게 감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다고 착각하게 만들기에.
옆을 돌아본다. 평소 보지 않던 것들을 돌아본다.
옆을 돌아보자,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아픔이라는 상처에서 괜찮음이라는 흉터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분명, 사랑일 것이다. 우리가 안타까운 선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옆에 있는 이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일이다. 유일한 방법은 괜찮다고,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한 마디와 진심 어린 마음이 섞인 말 한마디 일 것이다.
사랑을 주자.
내 곁에 머무르는 모든 이의 아픔과 슬픔이 흉터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랑을 주자. 그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사랑을 전해주자.
사랑을 나누어주자.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일은 어둠이 드리워진 그의 주변을 밝은 빛으로 비춰주는 우리의 사랑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