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사랑은 있다.
거금을 들여 첫 카메라를 질렀다.
5년 전, 호주에서 생활할 당시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무심코 카메라를 샀다. 어떻게 조작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쉬는 날이면, 거리로 카메라를 들고나가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기록하곤 했다.
길거리에는 ‘Homeless(집이 없는 사람)’가 심심치 않게 보였고, 우연히 한 여성이 홈리스로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순간, 넋이 나가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한 장면을 기록한다.
그녀는 분명, 차가운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 홈리스를 못 본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을 텐데, 마치 지인과 대화하는 듯한 거리낌 없는 말과 자연스러운 대화가 걸어가던 그 모습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그녀가 참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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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근처 슈퍼마켓 앞, 뚱뚱한 남성이 매일 바닥에 드러누워 음식을 구걸하는 것을 목격했고, 나는 늘 그를 못 본채 척했다. 돈이 없다는 핑계로 늘 그를 모른 척한 것이다.
시티에서 그녀의 행동을 목격한 이후로, 매일 어떻게 하면, ‘나도 그녀처럼 학교 앞에 누워있던 그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고민한다. 단순히 돈이나 음식을 사다 주는 것이 아닌,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와 작은 세계를 공유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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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시간과 함께 흘러갔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쯤, 다시 슈퍼마켓 앞에 여전히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야겠다.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그에게 가져다 줄 샌드위치 콤보를 하나 산다. 음식과 약간의 돈을 건네자 그는 내게 고맙다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한다. 정말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작은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린 그림이다. 아마도 그건, 그가 바라본 세상이었다. 나는 그의 세상을 선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잠시 작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샌드위치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에 대하여…’ 대화는 가벼웠다. 서로에 대해 과하게 궁금하지 않으며, 그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으로부터 나는 그의 세계를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 주변엔 다양한 사람과 사연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때로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이 우리 곳곳에 숨 쉬고 있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그 ‘어디’는 곧, ‘우리’를 말한다. 우리에겐 사랑이 있고,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서로 공명한다. 이는 사랑의 대상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맑고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디에나 사랑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