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릴 줄 알았는데.
2년 가까이 혼자 달리기를 해왔다. 달리기는 꽤나 고독해, 20분 이상 홀로 지속하면 몸과 마음에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우울감에 빠지던 날, 몸이라도 혹사시키면, 정신이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무작정 시작한 달리기. 달리기는 내 삶의 일부다.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처럼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꼭 달린다. 혼자 달리면, 지독하게 외롭고 힘들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성찰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와 달리기의 닮은 점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좋을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혼자만을 위한 달리기를 지속해왔다. 어느 날부터 내 눈에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처럼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싶은 마음에 러닝 크루를 찾았고, 지금은 그들의 일부가 되어 함께 달리고 있다.
러닝 크루의 목적은 '달리기'다. 온전히 달리기 위해 모였다. 나이나 직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나이대와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 직업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달리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늘 '경험'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렇게 그들의 삶에 들어간다. 그들도 내 삶에 들어온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서로의 땀을 나누며 달린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 혼자는 어려울 것 같던 문제가 이렇게 함께 달리다 보니,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나는 분명 혼자인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옆에서 달리기를 하는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들도 나를 응원해주는 것일까?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무언가 내 편이 생긴 것 같다. 함께 달리기의 힘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다.
요즘 고민이 참 많다. 사실, 늘 고민은 많았다. 퇴사를 하고, 회사 밖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회사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모든 것이 내게 기회처럼 보였다. 함정은 모든 것에 있었다. 나와 다른 방향성을 가진 기회도 나의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하고, 때로는 욕심을 부렸다. 그러다, 제 풀에 지쳐 "아, 이건 아녔구나"하며, 마음을 접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개월. 국가에서 실업급여라는 이름으로 얇은 방패막을 선물해주었다. 내가 이 방패를 잘 사용했는지 아닌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겠다. 삽질도 많이 하고, 나름 성장도 했으니, 반반이라고 해야 할까? 치킨은 반반이 맛있는데, 이건 반반이 좋다고 말하기가 참 애매하다.
회사를 뛰쳐나올 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은 굳건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꽤 괜찮은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겠지만, 그때의 나는 새로운 시작에 대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두근거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처음의 심장 박동의 세기보다는 크기가 많이 줄었지만, 고기도 처음 뜨거운 불에 구우면 겉만 화르르 타버리는 것처럼 이 두근거림도 적당한 속도의 쿵쾅거림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실업급여를 받은 지 5개월 차. 다음 달이면, 이 얇은 방패막은 사라져 버린다. 솔직히, 많이 두렵다. 무섭다. 마음이 급해진다. 당장 돈이 들어오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다음 돈을 들어올 구멍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게 된다. 가장 쉬운 길은 모 회사에 취업해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작년 12월 말, 당차게 회사 밖으로 걸어 나올 때, 다시는 회사로 돌아오지 않겠다 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스스로 강해져,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는 당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많이 나약해졌고, 불안에 떨고 있다. 회사라는 튼튼한 방패막이 없으니, 가벼운 바람에도 내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대로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던진다. 마치 민들레 씨처럼 마음과 다르게 이상한 곳으로 멀리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본질은 퇴색되어 간다. 무엇을 위해 회사를 나왔고, 어떤 방향으로 어떤 상품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인지, 모든 것들이 희미해진다. 안경 앞으로 뿌옇게 낀 서리처럼 나는 지금 불안함이라는 김서린 안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내 모든 것을 들켜버렸다.
러닝 크루를 하다 보니, 다양한 직군과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 중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좋은 형들이 있다. 어제 그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회식을 했다. 2차로 향하는 길,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어떤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일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거다!" 하는 아이템을 단 번에 말할 수 없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아무것도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는지 두루뭉술하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무엇이라도 된다는 냥 크게 떠들어댔다. 그런 말을 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아무도 나를 물어뜯지 않았는데, 누군가 공격해오기라도 할까 봐 이빨을 내빼고, 으르렁거리는 겁먹은 강아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내게 꽤 관심이 많은 듯했다. 유튜브 채널을 잘 보고 있으며, 조회수를 올려주기 위해 몇 번이나 영상을 돌려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사실 유튜브를 보면서 네가 명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나는 둥그스름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방향성을 알고는 있으나, 어떤 도구와 상품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명확한 수가 없다. 아마, 욕심과 불안함 때문일 것이다. 이것저것 다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과 이게 안되면 저거라도 하겠다는 불안함에 보험을 둔 것이다. 부끄럽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지독하게 힘들다.
그는 내게 "꿈을 팔아라"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사람들은 똑똑하기 때문에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꿈을 파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사업장을 몇 군데 보유하고, 이를 잘 운영하고 있는 성공한 사업가다. 그리고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살아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의 말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온 피 같은 조언이었다. 내게는 그 조언이, 금보다 값비싸고 반짝거리는 말이었다.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스스로에게 지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회사를 나왔을 때 먹은 마음 다짐을 잘 유지하여,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불상사를 겪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맞다. 분명, 현재 상황을 피하기 위해 어디론가 회사를 들어간다면 결국 비슷한 굴례에 빠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들킨 적이 있던가? 옷이 벗겨져 벌거벗은 상태로 내 모든 것을 들킨 기분이다. 마음을 들킨다는 것은 쪽팔리고, 분하고, 도망가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벌거벗은 나 자신을 보여주고 나니, 이상하게도 속이 참 후련하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겠다. 막상, 벌거벗은 나 자신을 보면, 처음엔 비참하고 민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속이 후련할 정도로 시원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시원하게 옷을 벗어던지고,
살이 얼마나 쪘는지 말랐는지 육안으로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약해지지말자.
스스로에게 지지말자.
타협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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