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요.
"... 제가 이런 마음을 받을 자격이 있나요? 저한테 왜 이런 마음을 주시는 건가요?..."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 말은 돈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의미다. 내 가치의 기준은 돈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사를 때려치운 이유 중 하나에도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는 개인의 불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움직여야 더 많은 돈이 내 품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를 매일같이 고민했다. 정작, 나라는 사람은 배제시키고, 그저 돈만 바라본 것이다.
영상으로 내가 보는 세상을 담고 싶어 취미로 시작한 영상편집. 결과물이 나올 때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이만큼 잘 만들었어요!'라며 소문을 냈다. 내 손에서 탄생한 창작물을 감상할 때, 짜릿함이 미치도록 좋았다. 부모님이 자식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리고 누군가가 내 영상을 보고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 영상을 계속 만들어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유튜버로 성공해서 퇴사하는 것이 아니냐, 그것으로 돈은 얼마나 버냐, 지금 조회수로 통장에 금액은 얼마나 찍히냐" 등 돈에 관련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구독자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채널에 누가 광고를 써주겠나. 솔직히 그런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유튜브로 돈을 버는 방법을 궁리했다. 어떻게 하면, 채널을 브랜드화해 대형 유튜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를 밤낮으로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영상은 더 이상 업로드할 수 없었고, 나다운 말과 스토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리고 깊은 동굴로 점점 숨어 들어갔다.
주변에서 보내는 성화와 같은 응원은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종종 들려오는 '돈'과 관련된 질문과 남과 나를 비교하는 이야기는 나의 움직임을 '바보같이 시간을 보내는 멍청한 일'처럼 보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누군가가 나와 잘된 누군가를 비교할 때면, 그들을 인정하며 "아, 그분들 참 멋있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 "나도 잘하고 있어 X자식아.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야?"라며 누구나 처음엔 이런 시기가 있다며 깡통이 가득한 빈수레보다 크게 유난을 떨었다. 나는 유튜버로 직업을 전향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어떻게 하면 맞출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 경험 그리고 에너지 등을 전달하는 이야기의 도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다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 풀어 꺾이고 싶지 않았다.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넘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난 이후, 유튜브에 동영상을 업로드할 때마다 심지어는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자신을 발견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의무적으로 올리는 게시글이 아닌,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담긴 움직임, 그것이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게 참 마음처럼 잘 안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2년이 다가오고, 집 근처에서 달리는 러닝 크루에 가입했다. 우연히 들어간 이 뛰 뛰 빵빵이라는 크루엔 좋은 에너지를 풍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에너지는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자연스럽게 크루의 일원이자 현재는 페이서라는 역할로 사람들에게 달리기의 즐거움을 전달하고 있다. 우연히 크루의 모임장이 내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되었고, 별 볼 일 없는 내 영상을 가능성으로 봐주었고, 내게 말도 안 되는 직함으로 나를 불러주었다.
‘영상 감독, 아트 디렉터 균'
....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욕심을 부렸다.
...
그리고 그는 러닝 크루 홍보영상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런 제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크루원이 200명이 넘었고, 인스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왕성한 크루에서 초짜가 잘 못 만든 영상으로 그동안 쌓아두었던 좋은 이미지를 날려버리면 어쩌려고,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근데 솔직히, 잘할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가 좋아하는 영상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은 분명 내가 추구하는 영상이지 타인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단순히 내 시선을 담은 작품. 하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꼭 도전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촬영을 해보겠다고 제안에 수락했다.
내가 사랑하는 달리기, 그것을 하는 사람들. 그들을 담아보고 싶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번개 모임에 참석했다. 그날, 코스가 대부분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런 신체적 힘듦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프레임 안에 담기는 사람들의 땀방울, 발구름, 숨소리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담는 데에 온 힘을 다했다. 뭐, 사실 결과물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달리기와 좋아하는 영상을 함께하니 그 순간에 미쳐있었을 뿐이다. 미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촬영하는 것이 처음이었고, 빛과 소음 그리고 피사체의 역동적인 움직임 등 다양한 촬영적 악재가 가득했지만, 나름 결과물은 괜찮게 나온 듯했다. 사실, 결과물에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스스로 도전을 나름 성공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좋았고, 새로운 환경을 극복했다는 것과 사람들의 환호가 좋았다.
그렇게 나의 러닝 촬영은 시작되었다. 아니, 균삼의 영상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말도 안 되는 칭찬과 누군가가 인정해준 가능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스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회가 없었다면, 시도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응원이 없었다면, 제 풀에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많이 구리다. 구리고 구려서 더 구릴 것도 없다. 그래서 재미있다. 진흙탕에 뒹굴러도, 누워서 촬영을 해도, 어딘가에 긁히더라도 영상을 만드는 일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에너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짧은 이야기가 담긴 영화 같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가능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정. 비관적인 시선이 아닌, 이미 꽤 괜찮은 사람으로 불러주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게 메마른 땅의 장마와 같은 힘을 불어넣어주었다. 내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믿고 밀어주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좋은 영상을 더 많이 만들으라는 의미를 전하며 그는 내게 고가의 '고프로'를 대여해주었다.
카메라는 쉽게 고장 나고, 긁힘에 예민하다. 그렇기에 소중하다.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쉽게 내어주지 못하는데,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 이 카메라를 내게 장기 대여해주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자신의 물건을 타인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믿고 맡기는 것이 아직도 믿기질 않는다.
그리고 오늘 놀라운 연락을 받는다.
"균아, 누군가 익명으로 너의 움직임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장비 지원을 해주고 싶대."
"촬영하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니?"
...
"..........형님........."
"...제가 이런 마음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요.."
https://www.youtube.com/watch?v=fJi-8jpOSz0
훗날 나도 누군가에게 "그냥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라는 말과 함께 도움을 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