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하소연

by 식빵엔 땅콩버터

나는 OO을 이해할 수 없어.


찜통더위가 끈질기게 이어지던 지난여름이었다. 갑갑한 마음이 들어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친구는 내가 고등학생 때 만나 거의 3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마이 올드 프렌드이다.


대화의 주제는 중학생이 된 친구의 첫째 딸. 이전에도 자신과 유독 성향이 다른 맏딸 이야기를 여러 번 했었다. 친구 딸은 학교에서는 학급 임원을 도맡아 하고 성적도 상위권인 소위 모범 학생. 그런데 친구는 염려스러워했다.


"이제 중학생이 되니까 중간, 기말고사가 있잖아. 그 시험에 너무 긴장을 하더라고. 잘 보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까지 예민하나 싶어. 너도 그랬어? 너도 공부 잘했잖아. 시험 점수 잘 안 나오면 예민해지고 그랬어? 넌 그러지 않았지? 너를 너무 몰아붙이진 않았다고 했잖아. 그렇지?"


"어, 그랬나? 그랬던 것도 같고. 당연히 노력이야 했겠지. 그런데 너 말대로 OO만큼 예민하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수십 년 전 어렸던 나의 마음을 정확히 기억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공부를 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에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니었을 거라 어림짐작할 뿐. 야간자율학습이 있던 그 시절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에 왔으니 공부의 양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엄청났고, 서울로 대학을 오고 싶은 나였으니 성적에 무신경 했을 리는 없다.


"그리고 학원에 다녀야겠다고 하길래 보내줬더니 숙제하느라 밤 12시를 넘기기도 해. 그러면서 울고불고 짜증 내면서 숙제를 하더라니까. 그러려면 학원 다니지 말라고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게 되더라."


공부 욕심이 많고 승부욕도 강해 목표한 걸 쟁취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의 마음도 알겠고, 걱정이 앞서는 친구의 마음도 모르지 않다.


"중학생 때 나는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았거든. 그런데 OO은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그랬어. 엄마는 중학생 때가 제일 좋았다고.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 쌓으면서 마음 느긋하게 학창 시절을 즐기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에 했던 말일 것이다. 중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이미 나도 여러 차례 들었던 말. 얼마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만날 때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하는 걸까.


힘든 오늘을 살다 보면 예전의 빛나던 시절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법이다. 그 말을 들을 때면 그동안 여러 일을 겪어내면서 이제는 아이 셋의 엄마가 된 친구의 얼굴에서 중학생 시절 아무 걱정 없이 마냥 행복해했을 그때 그 모습을 찾게 된다. 지금의 그 어떤 걸로도 그때의 순수한 행복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서글프다.


난 OO을 이해할 수가 없어.


친구인 나한테는 그리 팍팍하지 않은데 딸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건 비단 내 친구뿐 아니라 이 세상 엄마들의 숙명인가? 잘 키워야 한다는 불안감에 그리고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우리도 시행착오라는 걸 겪고 그러면서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게 되니 말이다.


OO은 그런 아이야~ 너랑은 다른 아이이고~ 너를 기준으로 이해하려 들면 이해가 당연히 안 되지~ 뭐 이런 이야기들은 문제 해결에는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아 이번에는 친구의 하소연에 맞장구를 쳐주며 듣기만 했다. 친구도 머리로는 알겠지만 서로 다름을 인지하는 그 순간에는 답답함이 먼저 밀려오나보다. 그 답답함에 목소리는 격앙되어만 갔고 늘 그랬듯이 자기와는 너무 다른 OO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러고선 너 어디 나가는 길 아니었냐며 자기가 너무 붙잡아 뒀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내고 나니 온몸에 땀이 흠뻑. 30도가 넘는 더운 여름날 30분 이상을 바깥에 서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정류장 주변을 배회하며 대화삼매경에 빠졌다가 전화를 끊고 나니 왜 이리 주변은 또 조용한지. 그제야 아차 싶었는데. 분명히 내 목소리는 그 조용한 정류장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렸을 거다. 나 뭐라고 했지? 별 말 안 했겠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 저기 내가 타려던 버스가 다가오고 있다. 버스에 올라타서는 맨 뒷자리로 서둘러 가 앉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본다. 그런데 어쩐다 친구의 하소연은 오늘도 아무런 진전 없이 끝나버렸다. 내 친구가 자기와 180도 다른 딸을 있는 그대로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날이 과연 오긴 할까? 너무 늦기 전에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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