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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늘 그렇다

by 식빵엔 땅콩버터

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십 대 중반에 나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유학 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월세 4~5,000엔 정도의 단지형 학교 기숙사. 단지 바로 옆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었고 도보 10분 거리에 마트와 전철역이 있었다.

기숙사 건물 안에서 바라본 창 밖 모습 (자전거가 줄줄이 쓰러져 있다.)

나리타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기숙사에 도착한 첫날. 기숙사 사무실 직원의 안내로 나는 3층 306호로 올라갔다. 열쇠만 받았는지 직원도 동행했는지 기억엔 없지만 동그란 안경을 쓴 직원의 심드렁한 표정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그 뒤에도 가끔 마주칠 때마다 그녀는 왜인지 같은 표정이었다.)


배정된 방의 문을 열쇠로 열자 2평 남짓되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룸이었던 기숙사 방은 입구에 들어서면 왼편에 화장실, 오른편엔 미니 부엌(1구짜리 조리대와 그 밑엔 미니 냉장고) 그리고 책상, 수납장, 옷장, 침대에다가 에어컨도 달려 있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미니 발코니까지 갖춰져 있었다. 저렴한 월세를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풀옵션 기숙사였다.


빛도 잘 들어왔던 기숙사


외국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다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 아닌가??


시작이 늘 그렇듯이 나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에 들떴다. 도쿄 근교로 대학 진학했던 영화 <4월 이야기>의 우즈키처럼. 대학 캠퍼스에 대한 환상을 가진 채 서울로 상경했던 스무 살 때도 그랬고, 유학을 떠난 스물여섯 그때도 그랬다. 성장할 미래의 나를 기대했던 나날이었다.


서울에 상경한 이후, 자취를 5년 넘게 해 왔던 터라 유학도 그 생활의 연장선이긴 했지만 거긴 엄연히 외국이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대학원 졸업이라는 허들을 넘기까지, 좌충우돌 유학생활은 이렇게 2평짜리 학교 기숙사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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