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더운집에 안 살아봐서 그래?

그래도 해가 좋아

by H Jung
출처: dailysabah.com - Vietnam's Hanoi, the city of 'tube houses'


하노이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좁고 깊숙한 튜브형 가옥 (Nhà ổng:냐옹). 꼭 어릴 때 갖고 놀던 직사각형 필통같이 길쭉한 집이다. 전면은 3-5m인데 비해 깊이는 20m-30m 비대칭적인 특징이 있다. 건물들끼리는 주로 틈 없이 붙어 있기 때문에 옆 창문은 없고,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해가 들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 있다. 그래야 체감온도가 40도가 넘는 더운 날에도 에어컨 없는 집에서 생활이 가능하니까.


우리 집은 현대식 아파트라 튜브 하우스처럼 길쭉한 형태는 아니지만 현관 쪽에는 창문이 없어 집에 들어설 때면 어두운 인상을 준다. 난 이게 영 마뜩잖은데, 집주인은 최고의 집이란다. 그래 베트남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북동향집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역시나 나는 밝은 해가 내리쬐는 집이 그립다. 그간의 알고리즘 기반으로 내게 추천되는 사진들을 봐도 모두 해가 드는 사물, 공간 혹은 밝은 빛이 만드는 식물의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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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살이 신혼집, 두 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둔 추석 즈음 아기띠와 한 몸으로 다니던 시절. 이 집에서 살면서 좋은 일 많이 생겼었다며 계약연장을 암시하며 행운을 빌어줬던 집주인은 재계약 때가 되자 미안하지만 집을 팔게 되었고 새로운 집주인이 들어와 살 예정이라고 했다.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 뭐 하나 수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친정집 주변으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았고 좀처럼 맘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더랬다. 아니 맘에 드는 집은 우리 예산이 부족했다. 운 좋게 당첨된 아파트 덕분에 수년 뒤 새집에 들어가기 전까진 빠듯한 예산으로 구할 전셋집을 찾아야 했다.


부동산은 아무래도 대목시즌이라 거래 속도가 빠르다며 계약을 재촉했다. 낮부터 여러 집을 돌고 돌다가 아버지께 아이를 맡기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엄마와 엄청 많은 집들을 들여봤었다. 욕조에 곰팡이가 가득한 집, 너무 좋은데 비싼 집, 현관에 널린 소주병과 거실에 널려진 아기용품의 조화가 영 불편했던 집, 그러다 꽤 괜찮은, 안방 벽지 한 면이 새파란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평수 다른 집 대비 시세 2천만 원이 낮은 집이었다. 오! 본 집 중 가장 깔끔했고, 1층이긴 했지만 앞뒤 도로도 아니라 시끄럽지도 않고 곧 걸음마가 시작될 아이의 지구 탐험에 나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다. 햇빛. 촉박한 시간, 늦은 오후에 발견한 집이라 그 집에 해가 얼마나 드는지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한번 더 봤어야 했는데, 지치기도 하고 재촉에 떠밀려 빠르게 결정해 버렸었다. 서울에서 북향집 1층은 해 드는 시간이랄 게 없었다. 반지하에 가까운 어두움이었다. 거실과 안방이 북향이었고 조경수로 빛이 대부분 차단되었으며 그나마 반대쪽 주방의 아파트 복도 쪽으로 난 a4 사이즈 창문 두 개에서 해가 들었는데, 다 늦은 오후에 앞동 창문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주황색 해였다. 은은하게 지는 해가 아닌 유리에 반사되어 팟!! 하고 불편감을 주는 눈부신 햇빛. 결국 그 마저도 가릴 것이 필요했더랬다.

어두운 북향집에 들어오기 전엔 몰랐지. 내가 얼마나 햇빛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항상 불을 켜야 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식물들이 웃자라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아무리 바깥공기가 안 좋아도 식물 때문에 환기하고, 숨 잘 쉬라며 넓고 빳빳한 크로톤 잎을 닦던 나였는데. 해를 못 보고 살았던 2년은 내가 즐기는 취미활동의 질과 만족도도 떨어뜨려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딱 2,000만 원어치의 햇빛이었다. 2년을 살았으니 하루로 치면 약 27,000원. 다행히도 이후 입주한 내 집은 동남향에 고층이라 식물을 50개 넘게 키우며 행복한 식집사 생활을 했지만, 3년 전 남편 발령으로 모두 처분하고 지금 나는 하노이에 와 있네.


그리고 내년이면 이사다. 국가, 도시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지만 호옥시 또다시 더운 동남아로 가게 되더라도, 고를 수 있다면 꼭 해가 많이 드는 집으로 구해야지. 그 해로 내 마음을 덥히고 나를 돌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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