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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주 Jul 13. 2024

그 회사를 왜 '떠날 결심'을 했을까?

일터의 근육

평소 멋있다고 생각했던 리더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다고 했다. 불과 3개월 전에 입사 소식을 전해 들었던 곳이라 솔직히 좀 놀랐다. (브랜드 이미지가 매우 좋은 곳이었기에) 그 좋아 보이는 회사를 3개월 만에 떠나게 만든 '이유'가 있었음에, 또 한편으로 그렇게나 빨리 '퇴사'라는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에.


한 시간 남짓 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들었다. 이해가 갔고 납득이 갔다. 회사도, 리더분도, 아무도 잘못한건 없없다. 단지 서로 맞지 않았을 뿐. 대화가 끝난 후 회사를 결정하는 기준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그 생각을 정리한 글.




문화의 힘은 세다.

나는 리더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컬처핏(culture fit)'이 생각보다 강력함을 느꼈다. '직무 적합성(job fit)'만잘 맞으면 컬처핏은 서서히 맞춰가면 된다고 안일하게생각했던 나였다. 많은 기업들이 하고 있는 '컬처핏 면접'은 채용 트렌드니까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와 회사의 궁합을 예측하고 판단하기 위한 매우중요한 절차 중 하나였다.   


그 리더분이라 할 것 같으면, 업계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었다. 남들은 하나도 가기 힘든 유명 빅테크 기업을 몇 차례 돌면서 프로덕트 전문가로 20년 이상 경력을 쌓으셨다. 그 회사도 리더분을 데려오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스펙과 명성을 가진 사람도 컬처핏이 맞지 않으니 조직에 온보딩 할 수가 없었다. 리더분은 회사의 의사결정 방식과 설득 방식, 실패에 대한 태도 등 그 모든 문화적 요소들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 말했다.   


내가 들어가려고 하는 회사의 문화를 입사 전에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 쉽지는 않다. 만약 운 좋게도 입사하려는 곳에 지인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지원자보다는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다. 무엇보다 조직 문화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라 객관성이 좀 떨어진다. 실제로 나는 리더분이 퇴사한 회사에 다니는 다른 이들을 몇 알고 있는데, 모두 회사를 너무 좋아하는 회사 덕후들이다. 리더분에게 맞지 않았던 문화가 누군가에게는 잘 맞는 문화인 것이다.   


지원자가 컬처핏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럼 없는걸까. '컬처핏 면접'을 '회사'가 나를 판단하는 것에서 나아가 '나'도 회사를 판단하는 절차로 이용하면 된다.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원하는 회사의 문화에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의 인재상이나 조직문화를 찾아보고, 그에 맞게 자신의 사례들을 매칭시키는 방식으로 컬처핏 면접을 준비한다. 하지만 컬처핏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접근을 좀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지원하는 회사가 내가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부합한 회사인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그에 대한 답을 회사로부터 받아야 한다. 만약 어떤 회사가 굉장히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문화를 가졌다면, 자신들의 문화를 솔직하게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잡플래닛, 블라인드 등 내부 구성원들이 후기를 남길 수 있는 다양한 창구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플랫폼의 정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보면 비교적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객관화가 나다운 결정을 돕는다.

리더분은 '자기 객관화'가 매우 잘 돼 있는 분이었다. '퇴사'라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그리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어떤 것에 심장이 뛰는지, 어떨 때 일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내려가는지 등 스스로를 매우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빅데이터들이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리더분과의 대화 중에 (당장이라도 메모해두고 싶다! 느낄 정도로)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는 길과 못하는 걸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길, 이 두 가지 길을 전 선택할 수 있었어요. 1년 정도 시간을 더 투자하면 이 회사에 적응은 할 수 있었겠죠. 근데 후자를 선택하면 평범한 사람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원래 저대로 잘하는 걸 더 잘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겠다 마음먹었던 거예요. 그런 곳을 찾을 확률이 몇만 분의 일이라 하더라도요.


이렇게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경험과 해석의 반복이 있었을까. 리더분의 커리어를 떠올려봤다. 20년간 IT 업계에 계속 있긴 했지만, 스타트업과 대기업,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 스타트업도 0-1, 1-10, 10-100 스테이지를 모두 경험해 보셨다. 음식조차 다양하게 먹어봐야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데, 커리어는 오죽할까. 직접 부딪혀보지 않고 내게 맞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많은 경험이 자기 객관화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한 경험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경험과 나를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해석해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리더분에게 3개월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꽤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리더분의 결정을 듣고 "이분은 아직도 열정이 살아있구나" 느꼈다. 20년차에도 일에 대한 욕심과 잘하고 싶은 마음을 놓치 않는 것, 10년을 일해보니 그건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임을 알게됐다. 리더분이 몇만 분의 일에 있는 회사를 찾아 다시 날개를 달고 훨훨 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계속해서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동력을 갈구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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