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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덕 Feb 07. 2022

[종덕글귀] 하얀 사람

우리에게 어둠이 드리웠을 때

 

 잠자리에 들기 전, 내 침대 앞에 옷장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냥 문득 셔츠가 떠올랐고 이런 주제를 생각해냈다. (나의 MBTI 중 N의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를 먼저 적어놓고, 업로드를 위해 글귀를 다듬을 때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흰 셔츠로 쓰는 게 좋을까? 사실 흰 셔츠가 다른 색보다는 어둠 속에서도 가장 색이 잘 보일 것 같은데. 초록 셔츠, 노란 셔츠도 써보았지만 역시 흰 셔츠가 주는 상징성을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 어둠에서는 흰 색도 약간 회색으로 보이긴 하잖아! 그다음은 그림자와 어둠이라는 표현 중 어 걸 어디에 배치해야 좋을까, '하얀'과 '흰'의 표현 중 뭐가 좋을까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나름 신경 쓰고 글을 썼다.


 만의 일기장에 끄적이는 글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팔로워가 이렇게까지 많아지기 전에도 지금 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소한 글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고, 실제로 나의 의도와 다른 해석으로 당황스러운 댓글을 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작은 경험들로 인해 좀 더 신중히 글을 쓰게 되었는데, 맞춤법은 물론(가끔은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기도 하지만) 차별적인 표현은 없는지, 오해할만한 소지가 없는지 반복적으로 검토해본다. 물론 그럼에도 나의 생각이 바다같이 넓진 않으므로 누군가의 생각에 가로막힐 때가 있다. 이 글에서 나는 '하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잠시 고민했다. '하얀 사람'이 진짜 피부가 하얀 사람을 말한다거나,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독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흑과 백이 악과 선을 상징하듯이 여기서 흰색은 밝고 기쁜 마음과 같은 긍정적인 표현을, 어둠과 그림자는 우울과 시련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댓글로 당황하는 경험을 또 하고 말았다. '빛이 비치지 않으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알 수 없을 수도 있겠네요'라는 댓글이었다. 이 글귀는 '이미 우리는 모두 하얀 사람이다'라는 전제 조건을 생각하고 쓴 글이었다. 우리는 원래 밝고 행복한 마음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우울한 어떤 상황 때문에 잠시 가려진 것이니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는 위로의 글이었다. 하지만 저 댓글에 이런 나의 생각을 답글로 달 수는 없었다. 내가 글귀를 쓸 때는 항상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깨달으면서 위로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순간 나의 숨겨진 (딱히 숨겼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의도마저 깨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댓글 또한 그 사람의 느낀 점일 뿐이니 내가 덧붙이는 것도 웃기다고 생각했다. '하얀 사람' 보다 '어둠'에 집중하게 된 지금의 상황이 있겠지. 그래서 왠지 슬프게 느껴지는 그 댓글은 여전히 그 자리에 홀로 가만히 있다.


 이 글귀의 그림을 짱구로 선택한 이유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였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입을 빌려서 말하면 좀 더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린아이만큼 본인을 잘 알고, 본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용감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 그런 순수한 용감함에서 얻는 깨달음이 값질 때가 있다. 만약 이 글귀에 성숙한 그림이 붙거나 어른의 실루엣이 있었다면, 좀 더 무겁고 심지어는 슬픈 분위기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나이를 먹어도, 짱구처럼 늙지 않는 어린 시절 친구에게 위로를 받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의 글귀에도 이런 친구들의 힘을 빌릴 때가 많을 것 같다.


 우리에게 어둠이 드리웠을 때, 나는 원래 하얀 사람임을 의심하지 말고 가끔은 버티고, 가끔은 극복해내며 우리의 하얀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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