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오늘 출근 안 하면 안 돼?

#82. 나는 투정이 많은 게 아니라 남편이 좋은 거야

by 풍선꽃언니
야 너는 K(남편)
좀 가만히 내버려 둬라
맨날 빨리오라고 전화하고
난리를 치면 걔가 숨 막혀 살겠냐

아빠는 나와 올케를 가끔 비교하곤 한다. 아빠는 올케가 무던하고 둥글어서 남동생이 바깥일 하기 편하게 해 준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반면 딸은 남편을 볶아대는 악처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고양이 기질>
결혼을 했어도 아내나 주변 사람의 방해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고 자유시간이 필요한 사람의 특성

아빠는 고양이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결혼생활 내내 그랬다. 아빠는 친구들끼리 훌쩍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밤늦게 까지 술을 마시면서도 연락 한통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아빠의 늦은 귀가에 전전긍긍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내가 기억하는 동안은 포기를 한 건지 아빠가 늦든지 말든지 잠을 잘 자던 사람이었다.


아, 한 번은 엄마가 나더러 소방서에 전화해 아빠 실종신고를 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아빠가 회사에도 없다는데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나는 경찰에 신고해야지 왜 소방서에 신고를 하느냐고 물었다. 실종신고했을 때 소방서에서 위치추적을 잘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떻게 알게 된 정보인지 모르겠다. 나는 갸웃거리며 소방서에 전화를 걸었고 아빠는 <방화역 근처 어느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집에서 실종신고를 했다는 전화를 받고 놀라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술에 취해 두서없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빠 실종신고는 고양이 기질의 아빠에 대한 엄마의 깊은 분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사건 이후로 아빠는 엄마한테 최소한의 전화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엄마도 아빠가 연락이 되기만 하면 <집에서는 내 남편 밖에서는 나도 몰라> 모드로 아빠를 방관했다. 아니, 아빠의 고양이 기질을 존중하기 시작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잘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엄마의 방관으로 아빠가 말썽 피워 가정불화가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엄마도 고양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서로 불만이 없어 보였으니 <서로의 기질을 존중했음>이 맞다.


아빠는 오늘도 내게 회사에 가 있는 남편한테 왜 자꾸 전화를 하냐고 타박을 한다. 집에서도 맨날 보는데 밖에 나가서도 니 전화받으면 숨 막히지 않겠냐며.


"아냐, K(남편)도 내가 전화하는 거 좋댔어"


"너는 남자들의 세계를 몰라. 걔가 좋아서 좋다고 하겠냐. 너 듣기 좋으라고 좋다고 하는 거지"


난 남편이 밖에 있을 때 통화하는 게 좋다. 집에서 듣는 목소리와 다른 남편의 목소리. 사회인으로서의 그 목소리로 나와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가끔은 연애할 때처럼 느껴져서 한 번씩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하곤 한다.


"K(남편)야. 무엇을 하아~니"


남편도 웃고 나도 웃고.


아빠와 우리 부부 세 식구는 합가 한 이래로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다. 아빠는 엄마가 아빠를 위해 해 줬던 "좋았던 것" 들을 나더러 자꾸 남편에게 해주라고 한다. 가령 밖에서 일할 때는 전화하지 않는다든지, 퇴근 시간 딱 맞춰 식사를 준비해 놓는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는지 아빠의 조언을 통해서 점검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남편은 자유시간이 많아져서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 그래도 아침에 네가 출근하지 말라고 투정 부리는 부인의 마음은 너랑 더 같이 아침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야. 너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해.
(결국 웃으면서 보내준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 돼)

아빠를 통해 듣는 아내로서의 엄마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나의 엄마로서의 P여사(엄마)는 잘 알겠는데 아내로서의 P여사는 도통 어떻게 살았던 건지 합가 후에 잔소리하는 아빠를 통해서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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