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창문을 열었지만 바람이 안 불어서 덥다. 바람의 자리를 대신한 선풍기 수면풍은 일정한 강세를 두고 불었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다. 옆에서 남편의 호흡이 거칠다. 잠잘 때 특유의 긴 들숨과 짧은 날숨. 나는 계속 바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주변의 고요를 핑계 삼아 꼬깃꼬깃 숨겨둔 엄마를 꺼내어봤다.
"아무리 봐도 우리 엄만 예순 바라보는 아줌마 안 같아"
속으로 하는 소리지만 내일 아침 남편 깨자마자 물어도 남편 역시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엄마는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 나와 안 닮은 듯이 닮았다. 아니 실은 판에 박은 듯 똑같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혼식이나 어딜 가면 친가 쪽에서는 고모 젊었을 때를 빼다 박았다고 하고 외가 쪽에서는 지네 엄마 판박이라고 했으니 난 두 집안의 DNA를 고루 잘 받은 내 부모님의 딸인가 보다.
내가 아는 엄마와 모르는 엄마 사이에서 당혹스럽게도 나는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이 불쑥 밀려오기도 한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 엄마를 좀 도와줄 순 없었냐고 가장 가까이에 있지 않았냐고. 그러나 이런 말은 입밖에 낼 수는 없다. 아빠가 많이 괴로워하고 있으니까. 내가 몰라도 될걸 너무 많이 알필요도 없거니와 아빠가 얼마나 엄마의 병세에 지쳐가고 있었는지 눈으로 봤기에 나는 아무 말할 수가 없다.
괜찮았다, 악몽 같아 고통에 몸부림치다가를 반복한다. 좋은 것만 보고 가급적 맛있는 것을 먹는다. 피곤하면 곧장 자고 공허하면 글을 쓴다.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데 그토록 바라던 자유로운 삶 속에서도 나는 정서적으로 치열하게 싸워 나 자신을 매몰로 부터 지켜야 한다.
나는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생존하는 사람일 것이다. 내 자식은 엄마를 사진으로만 만날 테니. 언젠가 엄마의 죽음을 수용할 만큼 성숙했을 때 조심스럽게 내 책을 내밀면 내 자식은 그것을 입을 틀어막고 읽으며 내 아픔을 느낄 것이다. 지친 내 어깨를 토닥여 줄 수도 있겠지. 그때까지 나는 새어 나오는 비명을 집어삼키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한다. 엄마의 죽음을 단지 신의 영역 이었노라고,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였으니 덮어놓고 살자고 채근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