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부지런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까르 산책을 다녀오고 곧장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간다. 낮에는 주식 공부를 하고 저녁엔 까르 산책을 한번 더 나간다. 한주에 두 번 정도 친구들과 한잔하러 나간다.
남편과 나는 엄마 사고 이후에 살이 쪘는데 아빠는 꾸준한 운동으로 오히려 7kg 정도 감량을 했다. 왜 감량하는 것이냐 물으니 결혼하기 전 체격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빠는 몸무게 감량 하나에도 목적이 있고 성실하게 목표를 잘 달성하는 편이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살 거야?"
"나는 활동적인 인생을 사는 건 앞으로 75세까지 10년 남았다고 생각해. 그 이후에는 끌려가는 인생일 것 같고."
아빠 친구들은 활동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를 75세까지 라고 생각하는 아빠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엄마 사고 이후에도 삶과 행복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내 아빠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좀 진정되면 아빤 베트남 가서 좀 지내다 올 거야."
"왜 거기 뭐 있어?"
"아빠 후배 ooo 알지? 지금 하노이에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와이프같이 안 가서 심심해 죽겠나 봐."
헐. 아빠는 아빠 후배 주재원으로 살고 있는 집에 숙식을 부치고 하노이 원주민처럼 살아보길 꿈꾸고 있나 보다. 하긴, 엄마 있을 땐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아빠는 이제 자유니까.
아빠가 조금씩 엄마의 사고로 인한 끔찍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떠나서 제일 당황스럽고 힘든 건 아빠일 텐데.만일 아빠가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매일 누워만 있다면 나 역시도 아빠를 보며 우리 가족이 왜 이렇게 되었지 하며 더힘들어했을 것같다.
엄마 사고 전 아빠는 엄마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좀 더 소프트한 사람이었다. 요즘의 아빠는 좀 더 단단하고 (좋은 의미에서) 자기중심적이다. 아빠는 앞으로 살 날이 산 날보다 적기 때문에 아빠 자신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아빠가 전처럼 다정다감하지 않은 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나이 든 아빠가 언제나처럼 단단하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은 딸로서는 고맙고 든든한 일이다
아빠는 까르를 보며 자주 웃는다. 우리 아빠는 애보다 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다. 강아지를 하도 잘 돌보길래 나중에 애 낳으면 키우는 거도와달라고 했더니 아빠는 애 키우는 거 돕느라고 인생을 허비할 수 없다고 했다. 언젠가 태어날 아기는 남편도 아빠도 못 키워주니 나 혼자 키워야 할 것 같아 두렵지만 왠지 나는 이 또한 아빠가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만일 아빠가 그래, 다 늙은 마당에 애나 키우는 거 도와주마, 했다면 외려 아빠의 활력이 시든 것 같아 속상했을 것 같다.
아빠는 술을 마셔도 전후에 헛개나무즙을 꼭 챙겨 먹는다. 이틀 연속으로 술마시지않는다. 영양제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아프면 주말에 연 병원을 찾아서라도 진료를 보러 간다. 이 또한 아빠가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다.
엄마가 떠나고 난 아빠마저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오만가지 아빠 일상에 간섭을 했다. 병원에서는 불안증이라며 약을 처방해줬다. 병원 약을 먹어도 아빠가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난 요즘 아빠가 불안하지 않다. 아빠가 알아서 스스로를 잘 챙기는 모습을 보았고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