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엄마를 대신할 수 없어

#46. 아빠의 고백

by 풍선꽃언니
네가 있다고 해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건 아냐
아빤 여전히 외롭고 힘드니까
복잡한 얘기는 하지 마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처럼 아빠 곁에 있고 혈압약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면 아빠의 허전함을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아빠의 아내나 남동생의 엄마가 아니지만 엄마처럼 아빠와 함께 살고 있고 아빠와 남편, 동생 부부를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외출한 가족들을 기다린다.


"아빠, 우리 까밀라(강아지) 입양할까? 까르 동생도 만들어 줄 겸"


아빠는 엄마가 죽고 나서 까르에 대한 사랑이 이전보다 더 깊어졌다. 남동생과 내가 분가하고 아빠 엄마가 둘만 같이 살 때 적적할 까 봐 하루 이틀 돌봄을 부탁하다 아빠의 아기가 된 까르. 까르는 낮엔 아빠와 매일 산책을 나가 실컷 뛰고 밤엔 아빠에게 안겨 잠이 든다. 엄마는 까르만 보면 사람 아기 같다고 아빠랑 다투다가도 생글 웃곤 했다고 한다.

우리 까르는 예방접종 주사가 아팠는지 몹시 억울해 했다.

반려견 한 마리가 더 있으면 아빠 가슴이 조금은 더 채워질까 싶어 얘길 했는데 아빠는 싫은 듯 좋은 듯 거절을 했다. 하나도 이쁜데 둘 있으면 더 이쁘지 않을까? 아빠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맥주나 한잔 하자"


낮에 반찬 사러 갔을 때 마트에 맥주가 싸길래 여섯 캔 집었다. 아빤 술을 도대체 왜 이렇게 계속 먹으려 하냐며 이러다 알코올 중독된다고 핀잔을 줬다. 그런데 정작 저녁 시간대 되니 <파인애플 캔>을 안주로 지정까지 해주며 한잔 하자고 하신다.


"아까 나더러 알코올 중독될 거냐 하던 사람 어디 갔어?"


반격했다.


"없으면 안 먹는데 사면 계속 먹게 되니까 그렇지"


괴롭기야 아빠나 나나 매한가지인데 술을 찾는 마음이 다르겠어. 아빠는 나를 걱정했던 건데 혼자 발끈했던 게 미안해졌다.


"아빠 까르 동생도 입양하고, 우리 아이 낳으면 아빠가 아이 키우면서 시간 보내면 좀 덜 허전하겠다. 그지? 우리 노력할 거야"


나는 나의 출산이나 반려견의 입양이 엄마를 생각할 시간을 줄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내 관점에서는 당장 그러한 것들로 나는 또다시 휴직을 할 것이고 돌봄이 필요한 아가들을 위해 살다 보면 부쩍 몇 년쯤 흘러가 있을 거라고.


아빠가 말했다.

나는 어디에 매여있고 싶지가 않아. 아빠는 친구들 많이 만나고 좋은데 많이 다니면서 허전함을 더는 연습을 해야 해. 나는 당사자 입장에서 엄마가 없어서 느끼는 외로움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커. 주변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데 조금 먼저 간 거뿐이라고 위로를 하는데 그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소리인 거야. 아빤 너희 애를 보거나 강아지 키우느라 남은 인생 보내고 싶지 않아. 어떻게 사람이 평생 함께하기로 한 배우자가 없어졌는데 며칠 지났다고 괜찮을 수가 있어? 그건 엄마에 대한 배신이야. 니가 있다고 해도 엄마를 니가 대신 할 수 있는건 아니야.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아빠에게서 엄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잔. 또 한잔.


아빠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매 끼니 내가 차려주는 식사를 마주할 때, 좋은 집에 이사한 지금, 또 밤에 잠드는 순간에도 아빠의 일상에서 빠져나간 엄마를 나보다 더 앓고 있다.


아빠가 하는 말 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엄마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가족 모두에게 집안의 혼자 남은 여자로서 어떻게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줘 보려 애쓰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나는 아빠가 기댈 대상이 아닌 보살펴야 할 딸일 뿐이라 짐이 된다는 것을 나만 몰랐던 걸까?


와하하 웃고 말아버렸지만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나는 아빠의 말이 아파서 잠을 못자고 뒤척였다. 내가 엄마가 아닌게 미안할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아빠의 허전함을 채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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