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기가 먹고 싶다

#47. 식단에 진심인 나의 아버지

by 풍선꽃언니
나는 고기를 먹어야 하겠으니
이제부터는 괜찮은 식당을 발굴해서
내 취향에 맞는 신선한 식사를 하겠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겠지만 어젯밤 술 취해 들어온 아빠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놓자니 그러하다.


바야흐로 두 달 전 엄마가 죽고 주방 메가폰을 내가 넘겨받으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남편과 나는 캐리어 4개에 옷가지며 대충 때려 넣고 일산 집으로 들어왔다. 식사를 준비해야 하겠는데, 나는 뭐 주방 살림을 제대로 해봤을 리가. 엄마가 해준 밑반찬이며 양념고기 가져가 볶아먹고 지져먹고 해 본게 다인 실력에 끼니마다 가족들 밥을 해서 대령하려니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아빠와 남동생 사람 다 주방 살림은 여자가 잘 안다는 기대심리가 있다. 나는 뭐라도 해야 했고 내 실력을 아는 남편은 등 뒤에서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빠는 군생활과 평생 교대근무로 시간관념이 투철하다. 배꼽시계도 강력하여 하루 세끼 시간 때마다 끼니 밥을 먹는다. 한 달 즈음은 서로가 다 넋이 나가 입에 뭐가 들어가든지 말든지 하던 때라서 아침 식사는 시리얼로 대체했다. 당이 너무 많이 함유돼있는 표기를 보고 외국산 그래놀라로 바꾸고 우유도 건강하다는 브랜드로 바꿨다. 한동안 무리 없이 잘 드시는 것 같았다.


점심은 즉석국으로 대체했다. 여기저기 주문해봤는데 <국 배달 닷컴>이라는 업체가 괜찮아서 월식을 받아먹었다. 매일 다른 국을 먹을 수 있고 C 모 그룹에서 나온 즉석국 특유의 조미료 맛이 나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국과 밥에 일산장에서 사 온 반찬으로 한 달을 먹으며 버텼다


남편과 나는 큰 불만이 없었다. 합가 하기 전이나 후나 우리의 식단은 비슷했기 때문이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하던 생활에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둘 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저녁 한 끼만 잘 먹으면 되었는데 오히려 하루 세끼 잘 차려먹으려니 위가 부담스러웠다.


형편 어려운 사람들도
너네처럼은 안 먹고살겠다.

아빠는 우리 부부와 합가 하면서 식사에 대해서 특별히 기호를 밝힌 바 없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내가 아빠 말을 좀 허투루 들은 것 같다.


" 엄마도 없는데 고기나 사다가 구워 먹고살자"


나 편하라고 고기나 구워먹자고 하는 줄 알았다. 고기는 질이 좋기만 하면 구워서 내는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으니까. 대신 나는 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빠의 끼니식마다 국이 꼭 올라갈 수 있도록 신경썼다. 반찬이 변변치 않아도 국에 밥 한 그릇 이면 말아먹든 떠먹든 뚝딱 한 끼 해결이 되니 말이다. 엄마가 죽고 제일 먼저 찾은 것도 <국을 잘하는><조미료를 넣지 않은> 국 제조업체를 찾는 것이었다.


아빠는 끼니에 고기가 있어야만 식사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합가 후 두달이 지나서 알았다. 닭이든 소든 돼지든 종류는 무관하나, 따뜻하게 굽거나 삶은 신선한 고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긴 했다. 엄마는 살아있을 때 우리부부의 생활비를 대다시피 식자재를 공급해주었다. 그때마다 은퇴한 아빠 수중에 용돈이 부족하진 않을까 신경이쓰여 한 달에 이십만 원씩 오 개월 정도 쓰라고 카드를 줬다. 우리 나눠주는 게 그보다 많아 미안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결제 내역이 문자로 날아올 때마다 <창대 축산>이라는 업체가 압도적으로 많이 찍혔다. 내가 주말에 갈 때마다 엄마는 랩에 양념한 고기를 두둑하게 싸서 챙겨주었다. 도대체 고기만 먹고사는 건지 매달 거의 20만 원어치 꼬박 고기를 샀던 내역을 보며 몇 번이나 왜 고기만 사냐, 우리 주려고 그러는 거면 그러지 말고 아빠랑 먹고 싶은 거 외식도 하고 그러라고 말을 했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엄마의 소비 습관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빠는 우리 부부와 합가 한 지 두 달 만에 <고기를 못 먹어서> 4kg 정도 몸무게가 줄었다.

너희 먹는 거 보면, 형편 어려운 사람들도 그렇게는 안 먹겠다. 매번 콘푸로스트에 우유나 말아먹고 빵에, 똑같은 반찬 한 달씩 냉장고 들어갔다 나왔다.

아빠는 술 취해 들어와 마침내 식사에 대한 고충을 우리 부부에게 터놓고 얘기를 했다. 결론은 아빠는 저녁식사만 우리와 함께 할 테니 그때만이라도 고기를 좀 해달라는 것이고 우린 수락했다. 단, 나도 조건을 걸었다. 우리 집에서는 컵라면 금지.


컵라면 맛있는 거 누가 모르나. 아빠는 새벽마다 단지 내 커뮤니티센터에 운동을 다녀온다. 돌아오면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밥달라고 하기도 자존심 상하고 깨있다고 해도 차려주는 밥이라는 게 콘푸로스트라 갑갑해 죽겠다고 했다. 매일 아침 컵라면을 드시겠다는 것을 조악한 밥상이나마 차려드리는 대로 국에 밥에 드시기로. 점심은 능곡에 단돈 7,000원에 고기 밥상 차려주는 기사식당에 바람 쐴 겸 나가서 드시겠노라 선언하시기에 알겠다, 대답했다.

나는 신선한 고기를 찾아갈래

아빠는 오늘부터 아침 열 시에 갓 조리한 고기반찬을 위해 경의선 열차를 타고 능곡으로 달렸다.


주말에 친정에 올 때마다 엄마가 아빠 밥 준다고 솥뚜껑 운전수 노릇하기 버겁다고 푸념하던 목소리가 자꾸만 들린다.

"너네 아빠가 얼마나 웃기는지 아니?...."


일등 주부 우리 엄마 그간 까다로운 아빠 입맛 맞추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빠 돌아오면 기사식당은 어땠는지 물어봐야지,

그래도 난 있지, 우리 아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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