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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Apr 14. 2018

포식자

삶은 어둠이고

어둠은 무엇이든 집어삼키고 마는 포식자

나는 오늘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고층아파트 차가운 콘크리트 벽 속에 몸을 누인다

달빛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가로등도 꺼져 으스스한 밤

어둠의 촉수는 급기야 내 싸늘한 목덜미에 와 닿는데

쿵쿵 어디선가 들려오는 포식자의 발소리


아주 어렸을 적 꿈에

할머니와 나와 내 누이가 함께 자던 방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던 나는

금방이라도 문고리가 떨어져나갈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는 방문을 보고 까무러쳤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도 없고

누이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데

문득 다시 들려오는

포식자의 발소리 고함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고

소리치려 해도 소리칠 수 없는

저 포식자의 단단한 손아귀


나는 다만 

눈부시게 흰 비둘기 한마리가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조심조심 알을 꺼내다 나무에서 미끄러졌을 때

푸드득 하고 

내 호주머니 속에서 날아가던 어린 비둘기의 환영

달님이여 어서 어서

구름이여 어서 어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두루봉 동굴 속 퇴화된 백골을 닮아갈 즈음

포식자는 아침 식탁 위에

뜻 모를 눈물 한 방울 하나 남겨놓은 채

게걸스런 트림과 함께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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