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해당 이종헌 Jan 16. 2019

앵앵아, 미안해

아침에 일어나보니 왼손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선명하고 살갗도 빨갛게 부어올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아내에게 물어보니 어젯밤 술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집에 들어오다가 현관문밖에 자리 잡고 사는 길고양이(앵앵이)한테 물렸단다. 사연인즉 이렇다.     

지인이 모신문사 주최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하여 술자리가 이루어졌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주는 술을 덥석덥석 받아 마시다보니 금세 만취상태가 돼서 횡설수설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사달은 집 앞에서 일어났다. 기분 좋게 술 마셨으면 곱게 들어가 잘 일이지 못된 술주정 벽은 언제나 고쳐질는지 또 사고를 쳤다. 우리 집 현관문 앞에는 얼마 전부터 앵앵이라는 길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사는데, 잘 자고 있는 녀석 옆에서 같이 자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그만 손을 물리고 만 것이다.

앵앵이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이다. 주차장에서 애절하게 우는 새끼 고양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아내가 집에 있는 사료를 가져다 준 게 발단이었다. 녀석은 아내를 슬금슬금 쫓아와서는 앞집 출입문 위에 설치된 아치형 지붕에 터를 잡았다. 그곳에서는 우리 집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녀석은 1층 계단을 지나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창문을 통해 다람쥐처럼 그곳을 드나들었다. 여름과 가을을 그렇게 살면서 아내가 주는 먹이로 연명하던 녀석이 슬슬 우리 집 대문 안을 엿보기 시작한 것은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우리 집은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모모, 롱이가 집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낮에는 대문을 조금씩 열어두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녀석이 몰래 그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계단 밑 어두컴컴한 자리에 꼭꼭 숨어있는 녀석을 억지로 쫓아내려니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우리 집 롱이, 모모와 으르렁대며 싸우는 까닭에 어쩔 수 없었다. 녀석 때문에 출입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어서 우리 아이들도 마음대로 집 안팎을 드나들 수 없으니 나와 아내, 그리고 롱이, 모모 모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우리 집 모모가 녀석을 쫓아내려고 공격했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해서 며칠 동안 집밖에도 못 나가고 안방 침대 밑에 숨어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아무 쫓아내도 출입문 열리는 소리만 나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계단 밑으로 들어가 버리니, 얼마나 화가 났으면 차라리 차에 실어다가 먼 곳에 버려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이 계획을 말했다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동물학대 운운하며 엄청난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오죽 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다 했을까? 하지만 그런 내 마음과는 반대로 녀석은 점점 대담해져서 처음에는 계단 밑에서 숨어 지내더니 지금은 현관문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현관문 밖에 우리 아이들이 사용하는 캣타워는 녀석 차지가 된지 오래인데 캣타워 앞에 있는 유리창을 통해 집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임신도 했다. 약 일주일 전 갑자기 집 앞에 고양이 무리가 나타나 앵앵이와 어울려 다니기에 혹시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은 건가 해서 제발 형제들 따라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오해였다. 그때까지 녀석이 수컷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를 어쩌랴? 녀석은 암컷이었고 발정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추운 겨울, 새끼까지 밴 앵앵이를 쫓아내기는 틀렸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못된 구석만 있는 건 아니다.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내 다리에 매달려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앵앵” 하고 소리 지르면서 하도 매달려서 이름도 ‘앵앵’으로 지었다. 집 밖에 나가면 우리 집 롱이, 모모보다 더 잘 내 뒤를 쫓아다닌다. 그 애증의 앵앵이한테 미안했는지 어젯밤 술 취한 내가 잠깐 만용을 부렸나 보다. 며칠 전 가져다 준 사과 박스 안에서 잘 자고 있는 앵앵이를 끌어안고 자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그만 덜컥 손을 물리고 만 것이다. 한때나마 녀석을 미워했던 마음이 아직 손끝에 남아있었나 보다. 병원에 가서 고양이한테 물렸다고 하니 옆에 있던 간호사가 킥킥대며 웃는다. 항생제 주사 맞고 약봉지 달랑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