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바람은 상쾌하고 하늘은 아득히 높다. 아침 햇살이 너무 고와서 이웃집 담벼락에 기대 한참 동안 해바라기를 하다가 동네 한 바퀴 산책에 나섰다.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감나무의 감은 붉게 물들었고 코스모스는 하늘하늘 푸른 하늘에 취했다.
롱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모모만 졸졸 내 뒤를 따라온다. 개와는 다르게 고양이들은 겁이 많고 사람을 피하는 습성이 있어서 함께 산책하기가 쉽지 않다. “어머, 훈련 받은 고양인가요? 어떻게 고양이랑 산책을?” 롱이 모모랑 골목길을 돌다보면 이웃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롱이 모모는 보통 가정에서 기르는 고양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냥 평범한 고양이일 뿐이다. 특별히 훈련을 시킨 적도 없고, 훈련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산책 비슷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직 완전한 산책은 아니다. 녀석들은 중간 중간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녀석들이 나타날 때가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혹시나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또, 차에 치이지는 않았을까? 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다가는 정말로 녀석들과 길이 어긋나기 일쑤다. 그냥 느긋하게 길가에 핀 야생화도 보고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잎도 보면서 기다리다 보면 녀석들은 대개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사람의 일도 그런 것일까? 재촉하지 않고 누군가를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일 말이다.
모모는 지금 놀이터 한쪽 풀숲에 잠복해 있다. 낌새를 알아챈 새들은 벌써 날아가 버리고 꿀벌과 나비들만 꽃에 취해 분주한데, 새 대신 나비라도 잡으려는 건지 조심조심 접근하는 품이 너무 진지해서 그만 웃음이 난다. 웃음소리에 놀란 모모의 호동그란 눈이 꼭 푸른 하늘을 닮았다. 오늘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들 녀석에게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