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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당 이종헌 Nov 12. 2017

마지막 남은 열매는 먹지 않는다  

현해당의 북한산 이야기 14

북한산성 대서문. 1958년 경기도지사 최헌길 씨가 쓴 「북한산성 대서문 중수기」에 따르면, 공사기간 4개월, 공사비 698만환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윤행임을 아는가? 윤행임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으로 병자호란 삼학사인 윤집의 5대손이다. 21세 때인 1782년(정조 6) 문과에 급제 이듬해 예문관 검열, 초계문신(抄啓文臣)을 거쳐 규장각 대교가 되었으며 정조로부터 직접 ‘석재(碩齋)’라는 호를 하사 받을 만큼 총애가 깊었다. ‘석재(碩齋)’는 ‘석과 불식(碩果不食)’이라는 『주역』의 구절을 차용한 것으로 보통 ‘큰 열매는 먹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열매는 먹지 않는다.’의 뜻으로 풀이한다. 좋은 씨앗을 남겨서 다시 후세의 풍성한 수확을 대비하는 행위일 것이니 석과란 사람으로 치면 인품이 고결하고 학식이 깊어 만세에 이름을 떨칠 큰 인물이다. 정조가 윤행임에게 이처럼 대단한 호를 하사한 것은 그만큼 그의 출중한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윤행임은 학식 뿐 아니라 임기응변에도 능해서 다음 일화는 그의 뛰어난 재치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정묘 조(正廟朝)에 각신(閣臣)이 사사로이 임금을 만났을 때 김종수(金鍾秀)가 윤행임(尹行恁)을 향하여 ‘소[牛]’라고 하니, 윤공은 김 공을 향하여 ‘도깨비[魍魎子]’라 하였다. 정조가 변명하도록 하자 윤공이, “사서(史書)에 ‘윤탁을 「소」라고 하지 말라. [無以尹鐸爲少]’ 하였고, 역서(曆書)에 ‘도깨비는 김[甲子金]’이라 하였으니, 신은 소가 아니고 김종수는 도깨비입니다.” 하니, 듣는 자들이 포복절도하였다.(『임하필기』 제35권 「벽려신지」)      

정조가 승하할 때까지 윤행임은 그야말로 정조의 황태자 아닌 황태자였다. 25세 때 대교, 검열 등의 관직을 거쳐 27세 때 사간원 정언, 28세 때 고양 군수, 홍문관 부교리, 과천 현감, 규장각 직각이 되었고 31세에 대사간, 이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서기 1800년 정조가 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운명도 180도 달라지게 된다. 당색이 친 정조파인 ‘시파(時派)’였던 탓에 정조 사후 1년 만인 1801년 9월 임시발(任時發) 괘서(掛書)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지인 강진현 신지도에서 사사(賜死)되고 말았는데 그의 나이 겨우 마흔 살 때의 일이었다. ‘석과 불식’에 담긴 정조의 염원도 끝내 벽파(僻派)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말았으니 필시 인재란 하늘이 내린 것이요, 사람이 만드는 것은 아닌가 보다.     

대서문에서 수문 방향으로 이어진 성벽. 윤행임의 「북한기(北漢記)」에 대서문으로 들어가서 성을 따라 서쪽으로 꺾어져 약 삼백여 보(步) 되는 곳에 수문이 있다고 하였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윤행임이 북한산과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이렇듯 호들갑을 떠느냐고 불쾌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이쯤 해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윤행임은 28세 때인 1789년 고양(高陽) 군수를 역임한 바 있는데 이때 북한산성을 돌아보고 나서 쓴 유산기(遊山記}가 있다. 윤행임의 문집 『석재고(碩齋稿)』에 「북한기(北漢記)」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 이 작품은 필자가 지금껏 본 북한산 유산기 중에 단연 최고다. 북한산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많은 유산기가 있지만 윤행임의 것처럼 북한산성 내의 여러 사찰과 성곽, 문루, 장대 등을 빠짐없이 소개한 작품은 거의 없다. 문장은 간략하면서도 상세하고 평이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유산기의 특성상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삽입하여 읽는 이의 흥미를 유발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230여 년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 그의 작품을 따라 북한산성 유람에 나선다 해도 전혀 문제없이, 좋은 안내 지침서가 될 만큼 그의 글은 2백여 년의 시간을 초월해 우리 앞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현해당의 북한산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윤행임의 「북한기」를 번역해서 원문과 함께 소개하려 한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설명도 하고 사진 자료도 첨부해서 독자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오역을 줄이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인간인지라 다소의 잘못이 있을 수 있으니 질책은 좋으나 비방은 하지 말며 아무쪼록 매의 눈으로 잘못을 지적해 주기 바란다.      


끝으로 윤행임의 문집 『석재고』에 실려 있는 「북한(北漢)」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 소개한다.      


북한 [北漢]     


한어성 우뚝하여 허공에 걸렸으니 [捍禦城高掛]

구름길은 저 멀리 별자리에 닿았네 [雲磴犯星辰]

산에는 태초의 원기 쌓여있고 [山積鴻濛氣] 

스님들은 나무와 돌을 짝하며 사네 [僧憑木石神]

골짜기는 안개 자욱하여 밝은 날 없고 [洞霏無白日]

숲은 향기로워 늦봄의 정취가 있으니 [林馥有殘春]

사방에 콸콸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百道鳴泉去]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 본다네 [衣冠凈軟塵]

수문 터. 윤행임의 「북한기(北漢記)」에, “물길에는 돌을 7단으로 쌓았는데 높이가 양쪽 언덕과 나란하다. 맨 위층의 돌에는 아홉 개의 구멍을 뚫어놓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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