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당의 북한산 이야기 28
사람은 무엇으로 산에 오르는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영국인 조지 리 맬러리의 대답은 오늘날 산에 관한 최고의 명언이 되었지만 맬러리의 대답 역시 산에 오르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 결코 정답은 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문득문득 부딪치는 이 선문답 같은 질문에 대하여 우리 선조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지 궁금하다.
조선 숙종 때의 문인 신정하(申靖夏)는, 화악{북한산의 다른 이름]으로 떠나는 친구 정래교를 위해 쓴 글에서,
"가슴속에 좋은 경치를 갖고 있으면서 외물에 기대지 않는 사람은 꼭 화악을 보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곧 산에 가는 목적이 좋은 경치를 가슴에 담는 데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좋은 경치란 눈에 보이는 실경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산이 갖고 있는 내적 속성, 즉 산의 덕성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산이 갖는 덕은 참으로 크고도 위대하다. 산은 자애로우니 만물을 생육하고, 산은 지혜로우니 스스로 계절의 변화에 대응하며, 산은 준엄하니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기개가 있다. 또, 산은 천리 밖 먼 곳을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지녔고,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그 공덕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지녔다. 사람으로 말하면 현인 중에 현인이요, 군자 중에 군자다. 그 현인 군자의 덕을 가슴에 품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니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에게 산은 배움의 장소요 수양의 공간이었다.
아직 11월인데도 바람이 몹시 차다. 날이 추워질수록 산도 점점 사람이 그리워지는지 멀리서 백운대, 만경봉이 목을 길게 빼고 나를 내려다보고 서있다. 그동안 산에 다니면서, 산의 그 많은 덕성 가운데 하나라도 가슴에 품었으면 좋으련만 나의 지나온 삶은 그렇지 못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신정하의 글을 다시 읽어본다.
정래교를 화악으로 보내며
화악은 도성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우면서도 명승으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곳에 오른다. 백운대는 화악의 봉우리 중에 가장 높으며 먼 곳까지 내다볼 수 있어서 산의 명승처로 불리는 곳으로 화악에 유람하여 먼 곳의 승경을 바라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이곳에 오른다. 그러므로 넝쿨을 당기고 나무를 껴안으며 험한 바위를 붙들고 위험한 곳을 지나 백운대에 오른 후에야 그치게 되는데, 종종 근력이 부족하거나 몸이 불편하여 오르지 못한 이들은 화악을 유람하고도 감히 그곳을 유람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지난 을해년(1695)에 사람들과 나흘 동안 화악을 유람하기로 하고 3일째 백운대에 오르려고 하였으나 비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문수사를 지나다가 굴 안에서 시를 써 그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그 후에 매번 화악을 유람한 이들을 만나면 백운대에 올랐다고 하는 이가 열에 여덟아홉이었다. 이에 나는 더욱더 지난날의 유람을 말할 수 없었고 이는 곧 한(恨)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내가 왜 그것을 한스럽게 여겨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날 이른바 백운대에 오른 자들이 모두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자들은 아니었을 것이니 다만 한번 백운대에 올랐다는 명성을 구하기 위해 원숭이와 민첩함을 다툰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 나는 진실로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날씨 때문에 오르지 못한 것뿐이니 실로 한의 원인이 백운대에 있지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 중에는 본디 가슴속에 좋은 경치를 갖고 있으면서 외물에 기대지 않는 이도 있어서 이런 사람은 꼭 화악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하물며 백운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윤경이 이 산을 유람한다고 하는데 반드시 백운대에 오른 후에야 그칠 것인가?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억지로 오르는 것은 속인들이나 하는 짓이니 이는 결코 옳지 않다. 진실로 기이한 것을 좋아하나 우연히 오르지 못하는 것은 나의 지난날과 같으니 또한 옳지 않은 것이 아니다.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또한 그곳에 오른다면 이는 마땅히 내가 부러워하는 바이니 유람 중에 쓴 시편들은 돌아와서 꼭 내게 보여주기 바란다.
병술년(1706) 삼월 하순 반관 병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