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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Aug 06. 2020

#5. 교사의 한 해는 2월에 끝난다

마지막 인사

2월 9일 금요일, 여전히 쌀쌀맞은 날씨


출근길임에도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나 아침부터 정신이 없는 것은 다른 하루들과 똑같다. 코로나 관련 안내장을 수합하고, 메신저로 보고파일 보내고, 출결 서류 확인하고, 마감하고 담당 선생님께 드린 다음, 비전자문서 등록해서 행정실에 가져다 드렸다.

책상 위는 대봉투와 통지표로 어지럽고, 애들은 새로운 반 언제 알려주냐며 알람시계마냥 울어댄다.

사물함 문을 열어 남아 있는 물건이 없는지 검사받으라고 한다. 다 확인했으면 자기 번호에 동그라미를 쳐야 한다. (이렇게 해도 물건을 매번 놓고 가는 아이가 있다.) 대봉투에 번호대로 이름을 써서 통지표와 단체사진을 집어넣어 봉했다.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꼭 집에 가서 보여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와중에 일이 터진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어제 장기자랑에서 은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나서는 책상 위에 놓아뒀는데 넥이 부서진 채로 발견됐다. 엉엉 울면서 머릿속에 사이렌을 울린 은이를 시작으로 주위에서 한 마디씩 나름의 증언을 덧붙이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아이들, 아이 짐 챙기러왔다 탐탁잖은 일을 당해 똥 씹은 표정의 아버님, 그리고 3분 뒤에 출장을 가야 하는 나. 우는 애를 달래고 사태를 봉합하지도 못한 채로 택시 안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다시 어머님께 문자를 드리고 통화를 했다. 마지막까지 그냥 넘어가질 않는군.

 

잠 못 자고 깼던 새벽에서 다시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교실로 돌아왔다. 천천히 이런 일이 있었다 설명한 다음 바이올린을 수리하려면 어떻게 부서졌는지 알아야 하니 혹시 실수로 부쉈다면 걱정하지 말고 솔직하게 적어달라고 구구절절 읍소를 했다. 누가 그랬는지 밝히지도 않고 혼내지도 않겠지만 혹시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 나쁜 거라고.

장기자랑 기록용으로 찍어놓은 사진이 그나마 도움이 됐다. 바이올린 연주를 마친 10시 20분부터 영어실 가기 전 11시. 돌아와 청소를 시작하고 급식 줄을 섰던 12시부터 12시 50분까지 내가 뭘 했는지, 혹시 보거나 들은 것이 있는지 입은 열지 말고 적으라고 했다.

일단 상자에 메모지를 받아 걷어놓고 아이들이 청소를 하는 동안 혼자 확인을 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다행히 한 친구가 패딩에 걸려 실수로 바이올린을 떨어뜨렸다며 고해성사를 해줘서 마음을 좀 놓고 마지막 한 마디를 칠판에 적으라고 미션을 줬다. 새로 배정된 반을 불러준 후 한바탕 이산가족처럼 탄식과 흥분이 가득한 교실에서 조용히 아이를 불러내 다시 확인을 했다.

"실수로 그랬구나. 알겠어. 말해줘서 고마워."

멋쩍은 듯 웃은 아이가 들어가고 나서 양쪽 부모님과 통화를 마쳤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진짜 1년을 끝낼 시간. 교사에게 1년의 끝은 12월이 아니라 2월이다. 휴대폰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른 채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시없을 순간을 남겨두고 싶었다.

"차조심, 길조심, 사람조심 사랑합니다~"

 

1년 동안 고생했다고 잘 가라고 고맙다고 담담히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를 따라툭, 툭 홍시감 터지듯 울음을 터뜨리는 애들을 안아주고,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 훔치는 우리 유안이와 악수도 하고, "선생님~ 짱이었어요~; 넉살 좋게 또 어느새 의젓하게 나를 토닥이는 한겸이와도 인사. 선물이라며 돌을 주는 건우,

"야, 돌 선물은 또 처음이네. 고마워, 힘들 때 만져야겠다."

"선생님, 흰색이 좋아요, 검정색이 좋아요?" 볼펜 들고 와 내미는 윤서, 말은 못 하고 그렇다고 교실을 떠나지도 못하는 채로 서성이는 신규

 

혼자 남은 교실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처음 시작했던 것과 같이 바닥을 쓸었다. 웃으면서 보냈는데 이상하게 빈자리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또 눈물이 났다. 유달리 서운하고 아쉬운 것도 아니고 그저 애썼다고, 선생 하느라 한 해 동안 너무 애썼다고 스스로를 달랜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됐다.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없고, 미련도 욕심도 없다.

이만하면 정말 괜찮은 마무리, 종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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