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색 Apr 06. 2022

셀프 흑역사 제조기(오글거림 주의)

20년 전의 나 vs 현재의 나

나태주 시인의 '풀꽃', 출처: tvn 예능 '유퀴즈' 한 장면 캡처

우연히 200x 년에 끄적인 글을 보다가 20년 전의 나를 추억하고 202x 년 현재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감수성 충만하던 20대 시절엔 블로그에 일기 쓰듯 사소한 이야기를 부지런히 써 내려갔다. 외사랑인지 짝사랑인지 전하지 못한 말들로 채워나가던 시기에 특히 더 열중했더랬다.

그렇게 셀프 흑역사를 남기던 시절의 풋풋함 너머 수치스럽기까지 한 블로그들을 무슨 미련인지 여태 지우지 못하고 있다.

미련이라 생각하면서도 어느 날은 실수와 허점들마저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채색되어 차마 지우지 못한 채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기를 적적하게 보내던 중 현재 심정(心情)과 심경(心境)에 대해 블로그에 써보고 싶어 티스토리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틈날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예전 블로그들이 떠올랐다. 다음, 네이버 등 이곳저곳 쓰다 만 블로그들이었다.

재미 삼아 과거 글들을 읽어보다가 200x 년 20대의 내가 스스로를 정의한 글을 보고 한참을 혼자 웃으며 추억에 빠져있었다.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대의 나를 떠올리며 40대인 현재의 나를 다시 재정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변했는지 또는 한결같은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을 듯했다.

언젠가 이 글 역시 10년, 20년 후의 내가 추억할 또 하나의 흑역사로 남을 테지만 그럼 또 어떤가? 현재 내가 그랬듯 미래 어느 날의 나에게 재밌는 추억이자 한 바탕 웃음거리로 더할 나위 없으니.

200x 년 12월 30일 20대의 나 vs 202x 년 x월 x일 현재 40대의 나
(풋내기 20대가 쓴 글에는 과도한 마침표 남용과 오글거리는 표현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지만 수정하지 않았다. 이 글을 보는 사람에게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하)

200x 년 20대의 나 ☞ 난.. 영화가 좋다.
202x 년 40대의 나 ☞ 여전히 영화가 좋다. OTT가 주가 된 지금도 한 달에 3~4회 정도 영화관에 가서 신작 영화를 보며 좋아하는 채널은 스크린 등 영화채널이다.

200x 년 20대의 나 ☞ 난.. 여행이 좋다..
202x 년 40대의 나 ☞ (코로나로) 여행 갈 수 없는 상황에 길들여져서인지 현재는 가까운 도서관이나 맛집 투어가 부담 없어 더 좋다.

200x 년 20대의 나 ☞ 난.. 무언가 "새로운 앎".."알아가는 것"이 좋다...
202x 년 40대의 나 ☞ 새로운 지식, 지적 유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좋다. 다만 단순한 '앎'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고 넓게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나아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데 쓰이길 원한다. 지식과 교양을 쌓기 위해 기본이 되는 독서 외에 접근방법이나 매체가 다양해졌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강의보다 온라인 강의가 일상이 되고 활성화되었다. 접근성이나 편의성뿐 아니라 전 세계 방대한 자료가 넘쳐난다. 최근엔 유튜브 등 영상으로 각종 관심 있는 강의나 교육뿐 아니라 '요리법', '영상편집' 등 취미생활에도 활용하고 있다.

200x 년 20대의 나 ☞ 난..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좋다.... 변화가 새로움과 신선함만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님을 안다. 때론 불안과 두려움일 수 있다는 것도.
202x 년 40대의 나 ☞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움이나 불안은 없지만 40대가 되고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점차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을 자각하게 된다. 안주하는 순간 뒤처질까 초조해하던 마음이 연차가 쌓이고 경력과 연륜이 생길수록 다스려졌고 어느 순간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점점 손 때 묻어 '오래된 것', 손에 익어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일이 잦아진다. 익숙함에 매몰되고 편안함만 추구하는 보수적이고 꽉 막힌 꼰대가 될까 봐 두렵다. 계속 정신 놓지 말아야겠다 다짐 또 다짐!

200x 년 20대의 나 ☞ 난.. 따뜻한 느낌, 부드러운 촉감, 달콤한 맛..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가까움이 좋다.....
202x 년 40대의 나 ☞ 여전히 손잡고 안아주는 등 스킨십을 좋아한다. 부드러운 촉감, 달콤한 바닐라라테 등이 여전히 취향이다.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를 선호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쳐 스킨십의 빈도나 대상이 줄어들어서일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든 만큼 인간관계에 '심리적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팬데믹으로 강제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심리적 거리 두기로 확대, 고착되지 않기를 바란다.

200x 년 20대의 나 ☞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없이 나태해지곤 한다.. 혹자는 무사안일주의라 나를 꼬집기도 하지만.. 그런 나쁜 점까지도 "나"이기에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때론 약점이 강점이 되기도 한다고 납득할 뿐..^^
202x 년 40대의 나☞ '천하태평'은 여전하다. 특별히 '걱정거리'를 오래 갖고 있지 않는다. 걱정 없고 불평불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부정적 생각)으로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으려 한다. 때때로 게으르고 나태해질 때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 계속 깨어있으려고 노력한다면 곧바로 제자리를 찾아올 거라 믿고 있다.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끝까지 살 길이다.

200x 년 20대의 나 ☞ 친구가 곁에 있어서 너무 좋다. 특히 그 친구가 나와 즐거움을 함께 나눌 때엔 더욱..
202x 년 40대의 나☞ 한때 친구는 내 삶에서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놓일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친구를 포함해 타인과 어울리느라 소홀했던,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과 사색할 기회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어쩌면 사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중간에서 주축이 되어 가장 활발한 전성기를 보내고 있을 40대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애쓰다 보니 서로 만나 교류하기가 여의치 않을 터. 그렇다 해서 친구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200x 년 20대의 나 ☞ 아마도 난..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단점 투성이의 인간일지라도.. 난......... 그냥 나일뿐... 나와 같은 인간은 세상에 나 하나일 뿐이니.. 가끔.. 내가 실망스러울 때에도 잠시 기운을 북돋우면 다시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있음에 순수하게 기뻐하며 실수투성이일지도 모를 나의 인생이 끝나기 전엔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을 수많은 기회와 행복의 소스를 확신하기에... 나는 오늘도 작은 행복까지 감사할 수 있으리~게다가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의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더욱더 내 안의 그릇이 넘치듯 행복하리~~


202x 년 40대의 나 어른이 되어 차분한 태도로 실수를 줄이고 감정의 동요를 조절할 줄 알게 되었으나 여전히 내 안에 아이 같은 철부지 마음이 존재한다. 어느 땐 주도권을 빼앗겨 어른답지 못한 언행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아프게 하거나 실망시켜 스스로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잘못을 빨리 인정할 줄 알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기본을 지키려 한다.


경험이 쌓이고 연륜이 생겨 상황판단과 대처능력으로 무장한 어른스러움이란 외양을 얻었으나 실제로 내 마음은 크게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쑹쑹 나있는 단점 투성이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려 한다. 그렇기에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과 기쁨을 느끼며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았다. 20대의 치기 어린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경험을 통해 단련된 40대의 나는 다만 조금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덜 흔들릴 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행복해지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포기란 없다.
이전 11화 우연한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