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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Feb 03. 2021

흐린 날의 기대와 맑은 날의 위로

[이십구일의 누리]

비틀비틀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손에 들린 유리병 안에는

미쳐 탐하지 않았던 욕심이

찰랑거리고 지독한 향으로 유혹한다.


비틀비틀

병에 입을 맞추고 뜨거운 불순물을

들이 마시니 왈칵 올라오는 좌절

휘청거리는 걸음이 결국 무릎을 꿇는다.

달아오른 얼굴에 마른 세수를 하며

쓴 숨을 뱉으니 잡아보지 못한

허영이 하얗게 피어났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흙탕물을 털어내 듯 온몸을 쓸었다.

맑은 밤에, 흐린 것은 내 속이고

젖어든 것 또한 내 속이다.

멀끔한 옷매무새를 알아보지 못하는

손 짓이 처량한 주정을 멈추지 못했다.


비틀비틀

허영에서 허상으로 깊이 빠져들기 위해

찰랑이는 병을 입술에 포갠다.

그것이 첫 입맞춤이라는 듯 긴장한 입매를

지나치던 어딘가의 본성이 깨어나길 고무한다.


비틀비틀

마침내 주저앉은 자리는 도태에 휩싸인 마지막 정신.

그 자리, 그대로 있어만 달라 손도장을 찍던 나의 시절.

필름이 끊긴 채 집으로 돌아온 익숙한 안정이 시야를 가린다.

도태를 가린 채 어깨를 빌려 도약하는 걸음.


비가 갠 청명한 밤을 벗 삼아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맑은 것은 내 속이고 비가 갠 것 또한 내 속이다.

바지 끝단이 젖어 해피엔딩을 맞은 동화는 찬란하나 거창하지 않았다.

낚아챈 술병이 아닌, 마주 잡은 손과 마주친 시선 끝의 침묵.

시선에 담기는 눈동자에 비친 나는 반짝이는 꿈을 꾸는 자였다.


취기는 언젠가 달아나기 마련이다.

주로 취하지만 길바닥에 내버려 두지 않는 습관.

가야 할 곳, 가도 되는 곳, 갈 수 있는 곳.

처량함을 허용하지 않는 관대한 습관이 단잠을 재운다.

그러므로 나는 빛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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