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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Jan 14. 2021

지금의 사랑이 내일과 같을까?

어제의 우리가, 오늘의 우리가 아닌 걸.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고. 충실하게 넘실거리는 사랑은 지금이 아니면 잠잠해지고 말아. 당장 십분 뒤면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 태풍이 불어닥친 다음날의 흔적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사랑이야. 지금은 사랑인데, 내일은 좋아하는 정도밖에 안 될 거야. 늘 사랑하진 않아. 가끔 미워하기도 하니까.


앞에 앉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서둘러 상대를 찾는다. 왼편에 놓인 휴지 한 장을 뽑고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면, 그때부터 열렬한 고백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은 네가 없어서, 휴지에 묻혀뒀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뼘이 넘는 길이의 휴지에 사전적 의미보다 정밀한 마음으로 파고들어, 예문을 남기기도 했다.


주문한 음식은 이미 테이블 모서리 끝에 방치된 채로 다른 '음식'이 되어가고 있지만, 야멸찬 관심으로 일관했다. 뜨거운 것은 번지는 검은 잉크로 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여백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흘렀다. 시선 끝에서 숨이 죽은 음식처럼 열기가 빠져나간 나는 왜소한 채로 젓가락을 들었다. 면의 가닥과, 건더기의 개수, 육수의 어울림이 떠나간 그릇 안에는 얽히고설켜있는 감정의 덩어리만이 남아있다. 젓가락으로 하나가 된 면을 푹 찔러 육수를 틈새로 흐르게 했다. 몇 번 흔들고 나면 가라앉았던 진한 양념과 건더기가 두둥실 떠오른다. 뜨거웠던 음식의 흔적이 모습을 나타내지만 같아질 순 없었다. 식어버린 국물과 함께 퉁퉁 불어버린 면을 숟가락에 쌓아한 입에 넣었다. 요리사의 손맛은 모르고 무의미한 끼니가 되어 반찬 투정하는 젓가락질을 감내해야 했다.


애초에 미지근했던 정수 한 모금을 마시고 팔짱을 낀 채로 몸을 의자에 기댄다. 휴지를 들어 마음을 읽어 내려간다. 내가 사랑했을 너에 대한 절대적인 마음 앞에서 삼자가 되어 소식을 읽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랑에 대해 읽어 내려가면 나는 동감을 하고 공감하지는 못 한다. 그리고 질문이 따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아쉬움에 털어 넣는 한 숟가락처럼 때를 놓친다면, 나는 그날의 영수증으로 대체할 것이다. 뜨거웠던 것은 다만 오늘의 점심뿐이었다고.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인연이 속출하는 시절을 맞아, 하루하루 맞은편 자리의 잔흔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찾는 것이 다만 떡볶이였을까. 내가 그리워하던 것이 결코 장면이 아니라는 것, 사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토해내는 그리움이 부담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너와 나를 이루었던 하루 안에 흩어지게 했다. 정갈하지 못한 마음이 휴지 조각으로 남지 않기 위해 그날의 마음은 일기장에 묻어 두고, 한 해에 한 번 오려낸 동그란 마음을 챙겨 너를 만나러 간다. 건네는 편지는 아껴오던 추억 한 가지와, 정숙한 글만 담아, 다른 우리를 애써 비슷하게 보이려는 노력의 결과물일 뿐이었다. 이제는 마음을 아껴야 한다. 나는 식을 새 없이 미지근한 정수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짐짓 차분한 사람이 되었다.


놓쳐 버릴까 조바심 내던 모락모락 한 사랑이 스치도록 두기로 했다. 뜨거운 음식을 앞으로 당겨 '후후'하고 열기를 불어낸다. 억지로 어울림을 조장하지 않고 국물을 그릇째 마셨다. 그리고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숟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 먹었다. 그제야 음식의 맛을 알아차린다. 처음 먹은 음식인 양, 허겁지겁 맛의 깊이를 탐색했다. 바람이 불었다. 휴지는 제자리를 지켰고 나는 볼펜을 꺼내지 않았다. 빈 그릇 옆에서 마음을 테이블 위에 차려 본다. 연필과 일기장을 꺼내어 붙잡지 않은 바람에 대해 써 내려갔다. 한 김 식은 마음, 그렇다고 차갑지는 않은 마음. 처음부터 일정한 온도로 고여있었을 마음의 정수를 일기장에 부었다.


손 끝의 저릿한 설렘, 숨찬 낭만, 천진한 달음박질도 없이 사랑이라 믿는, 일 년을 묵힌 편지를 받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불러, 사랑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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