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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Sep 23. 2021

때 마침

시간 다툼을 위해 재촉하는 걸음이 없기를

시간이 나를 부른다.

미래인지, 과거였는지 알 수 없다.

끝없이 하얀 길 위에

그림자도 없이 서 있다.


종종 길을 잃는다.

아니, 매 순간 잃고

시간의 부름을 놓쳤다.


먹구름이 흘러간 자리에

또 다른 날씨들이 밀려오듯

시간이 가고, 오고, 간다.

하염없이 멈춰진 것은 나뿐이다.


초침 소리에 맞춰 걷던 때 보다

바람이 흐르고, 해가 기울고

달빛이 드리웠다가 별소리에 귀 기울이는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인지

가늠하지 않는 지금이 좋다.


시간이 부른다.

나만의 ‘때’가 된 걸음을 내딛는다.

언제든 멈춰 설 준비된 걸음으로.






세상의 시간과 동행만 하기로 했다.

시간 다툼을 위해 재촉하는 걸음이 없기를.


세상과 별개로 흐르는 시간이 있다. 손목 위에서 작은 시침이

재깍 거린다. 내가 정하는 시간, 나만의 시간.

유일한 시간은 가끔은 오분 늦게, 때로는 한 시간의 멈춤을 허락한다.

늦어도 돼. 빨라도 돼. 잠시, 멈춰도 괜찮아.

세상은 흐르고 나는 잠시 멈추거나 늦어지거나 이르게 걷는다.

손목 위에 유일한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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