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책에 기대본 나의 사랑은 어디 즈음 있을까

by 붉은낙타



어린 시절 나에게는 두 종류의 밤이 있었다. 별일 없이 무사한 밤과 엄마 아빠가 싸우는 밤, 컵이 부서지고, 아빠는 게거품을 물고, 엄마는 얼굴이 벌게쳐 소리 지르며 울고.....그때 내가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너한테 처음 말했다. 엄마 아빠는 좋은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미워하고 욕할 이유는 늘 무궁무진했다. 명절인 것, 그때 집을 사지 않았던 것,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 컵을 그 자리에 둔 것 등. 둘 사이에는 늘 잔잔한 적의가 흘렀다. 그래서 나는 자주 배가 아팠다. 나는 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엄마 앞에서 아빠 욕을 하고, 아빠 앞에서 엄마 흉을 보는 기묘한 방식으로 효도를 하며 살았다.
차라리 부모님이 원치 않는 결혼을 억지로 했던 거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까? 그 불행한 관계의 시작이 애끓는 사랑이었다는 점에 나는 늘 혼란스러웠다. (중략) 그렇게 사랑했던 젊은 연인이 싸움에 지친 중년 부부로 늙었다. 아빠는 누군가와 이렇게 얽히는게 너무 지치는 일이어서 바람도 피우고 싶지 않다고 한숨 쉬었다. 엄마는 내가 연애를 시작하면 ‘네가 하는 사랑은 다를 거 같으냐?’면서 비아냥거렸다.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외로웠고 사랑이 필요했다. 동시에 사랑이 두려웠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서늘한 여름밤<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낯설다. 언제 나는 사랑을 했을까. 작가는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라고 했는데, 나는 내가 언제 사랑을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오만했다. 지금도 그 무렵 나의 패기가 떠오른다. 난 ‘다를’ 것이라는.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오만했을까. 나에 대해 확신했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넘어 ‘콩깍지’에 씌었을 무렵이었다. 엄마 나이쯤 되면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생에서 죽은 세포 떨어지듯 떨어지는 건 줄 알았다. 나는 엄마가 된 지금 사랑이라는 세포는 죽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저 옆에 있는 것을 나만 모르는.

예전에 p를 졸업한 졸업생 아이들을 만났다.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청년인.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된. 아이들과 술을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했는데 아이들은 나의 연애담과 결혼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만났냐며,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했냐며, 요즘은 어떠냐며,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은 친구처럼 일상을 묻곤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어떻게.... 그렇게 지내....왜 그래....” 아이들은 남편도 알고 지내는 사이라 남편과 관련된 구체적인 결혼생활을 더 물었었다. 연애도 결혼도 아이도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현재는 어떤 것일까.

책을 읽으며 나는 성숙하고 투명한 어떤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슬아를 만났을 때(물론, 이 말이 정말 만났다는 말이 아닌 건 알겠지? 나 혼자 만났다는 말이다), 구달을 만났을 때 들었던 삶의 투명감. 그 투명감을 느꼈다. 묵직한 투명감. 그러면서 자꾸 버릇처럼 비교하게 된다. ‘나는 어땠나, 나는 무엇을 했나, 나는 무엇을 하지 않았나, 나에겐 무엇이 있나’ 애인과 7년을 연애하고 동거하고 결혼하고 지낸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인 이 책은 나의 과거와 나란 인간을 짚어보게 한다. 나의 연애가 최근의 것이 아니라 나는 과거를 짚어볼 수밖에 없었다. 참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를 보면 연애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 과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인 서늘한 여름밤은 ‘사람이 혼자 살 수 없으면 싫어하는 사람을 떠나지 못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고 ‘내 마음 안에는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함께 싹을 틔’ 운 사람이다. 자신은 ‘사랑이 필요한 고무나무’라는 것을 알고 ‘제정신인 사람 중에 제일 나를 좋아했’기에 그를 선택했고 ‘결핍이 채워지자 네가 주는 사랑 뒤에 가려 있던 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건 지긋지긋’해서 늘 연애를 했고, 동거를 거쳐 결정한 결혼 이후엔 ‘결혼에도 방학이 필요하’다고 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모성애’를 말한다. 7년의 연애와 동거와 결혼의 일상은 그저 그럴 일상일 하루가 그저 그렇지 않은 삶이 된다. 일상이 삶이 되는 순간은 이런 순간이겠지.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면 좋다고 한다. 아이 덕분에 성장하게 된다고, 사랑을 배운다고, 전에 없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나도 해보고 싶다. 엄마가 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무척 궁금하다.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생겨서 나의 사랑을 흠뻑 다 쏟아보는 경험.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 사람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경험. 아이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고, 그 사람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경험. 아이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경험. 아마 한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분명 내 인생에는 아이가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아이의 인생에도 그럴까? 우리 부모님도 부모가 된 것이 후회 없는 결정이라 말한다. 내가 과거의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면, 아이를 낳지 말라고, 그냥 아이 없이 좋은 사람들로 살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 부모님은 부모가 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사람들이다. (중략)그러나 노력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 부모님은 성취 지향적이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분들이었다. 부모님은 양육이 자녀와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양육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표가 나오지 않는, 좌절스러운 과정였다.(중략)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엄마 아빠를 쏙 빼닮았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 목숨 걸고 출산하는 것이 두렵다. 별로 좋지도 않은 건강이 육아로 인해 더 안 좋아지면 내 삶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질 것 같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당첨되기 위해 마음 졸이고 싶지 않다.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에게 잠깐 아이 봐줄 수 있느냐고 아쉬운 소리 하는 전화를 걸고 싶지 않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아이가 울까 봐 눈치 보고 싶지도 않고, 노 키즈존 팻말에 상처 받고 싶지도 않다. 내가 밖에서 일하고 있으면 “애는 어쩌고?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무례함을 감내할 자신도 없다.(중략)이 마음 하나만으로도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서늘한 여름밤 <우리의 사랑은 언제 불행해질까> 중에서

작가의 일상과 삶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우리의 사랑이 언제 불행’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끝이 ‘불행’해질까 두려워 일상이 불안하고 흔들린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작가는 이미 오솔길의 굽이 굽이를 지나고, 지난 온 길이 어디 즈음인지 잘 보이지 않을 곳에 다다랐다. 이제 오솔길이 아니라 길이 아닌 길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곁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 갈 곳을 몰라 두려운 사람들, 걱정인 사람들, 불안한 사람들, 혼자인 사람들, 함께인 사람들.

나는 응원하고 싶다. 작가의 투명함이 흐려지지 않기를. 작가의 사랑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그 어디 즈음에서 내 사랑도 찾을 수 있을까. ‘어느 날은 너무 더워서, 또 어느 날은 너무 추워서, 몸이 피곤하거나 집안일이 남아서, 트위터를 하느라, 드라마를 보느라 귀찮아서’ 사랑 없이 사는 삶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밀려오는 회사 일과 하루 걸러 찾아오는 야근, 어제저녁 먹고 놔둔 설거지거리가 싱크대에서 기다리고 있고, 수납공간이 부족해 끊임없이 치워야 하는 작은 집에서’ ‘성욕은 사치’이고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그 눈을 감고 누워 쉬고 싶’ 어지는 생활이 오면 서로의 눈을 덮어주기를. 그러다 가끔 헤어짐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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